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아, 우리는 '있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인가, 있는 것은 보이는 것인가. 실상,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일러 '없다'고 한다.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 거기까지가 '있음'의 자리이다. 그 너머는 '없음'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항상 '있을 것', 즉, 있어야 할 것, 있으면 좋겠는 것,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하기에 있을 것은 'idea'다(idea는 원래 그리스말인데 '보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결국, 우리의 있음은 전도되기 시작한다. '있을 것'을 '원래의 자리'로 두고 지금, 여기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한다... 이데아는 항상 하늘에 있다. 그리고 내려오면 올수록,,, 이데아의 충만한 있음은 엷어지기 시작한다, 없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여기, 이곳은 언제나 빠진 것들로 가득찬 세상, 모자라는 세상이다. 항상 모자란다. 항상 모자라기에 우리는 땅과 하늘의 경계를 힐끔거리게 되며, 늘상 땅을 너머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거기, 충만한 이데아의 세계를... 그러므로 이데아의 세계는 우리의 밥이다. 우리는 항상 배가 고파 헐떡거린다. 우리의 탐욕은 하늘과 땅의 경계에 걸려 있다. 하늘과 땅이 합쳐지는 경지, 무한과 유한이 무너지는 경지, 모자라는 게 없이 있음으로 온통 충만한 경지, 신인합일의 경지를 우리는 목말라 한다. 탐심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모자라는 내 육신을 벗어버리고 있음으로 충만한, 시선에만 머무는 그 충만한 세계로 내 영혼, 볼 수만 있고 만져지지 않는 내 영혼은 볼 수만 있는 그 곳, 거기, 이데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를 갈망한다...
이데아의 세계는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보여도 없다. 꿈인가, 생시인가... 없는 것들을 모아놓은 세계를 뒤집으면 결국, 있는 것이 충만한 세계인 것을... 결국, 이데아는 지금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다. 지금 여기에... 그러므로 이곳이 없어지면 저곳도 없어진다. 저곳은 이곳과 운명을 같이 한다.
하나님은 이데아이신가... 하나님은 '이곳의 모자람'을 근거로 하여 말할 수 있는 분인가. 신형상은 과연 '무한'이신가... 그래서 우리가 결코 인식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육신, 그래, 육신... 그러나 이곳의 결핍을 근거로, 탐심에 가득찬 눈으로는 그분을 볼 수가없다. 보아도 보지 못한다... 다만, 그를 못박을 뿐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을 지금 여기의 모자람과 없음의 차원으로 끌어 내리는 자, 화 있을진저... 단지, 그리스도 그 분만이 만유의 충만이라는 것을 아는 자 복이 있도다... 지금 여기 있는 것, 없는 것... 이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기업으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영영히 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