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 2024

과학과 성경, 특히 창조는

서로 아귀를 잘 맞추기 어렵다. 요 몇 달 전부터 세상의 기원에 대한 대화를 몇 성도님과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내 생각은 이렇다. [교과서적인 생각이 아니라 나 일개인의 생각이다.]

요즘에는 유신진화론이 세를 얻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는 지구와 우주는 창세기 4장 이후, 즉,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이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사상 검증(?)에 답하자면, 나는 6일 동안의 창조를 믿는다. 여기서 ‘하루’란 ‘어둠을 마디로 하는 빛의 지속’이다. 단지 어떤 ‘기간’이 아니다. 창조는 ‘빛 안에서’ 진행된 작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창조의 하루가 24시간인지, 1000년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기간인지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1) 텍스트상으로는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6일 동안의 창조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 진행되었음을 믿는다(신화 Ⅹ, 역사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 땅과 하늘에 대한 정보는 오직 성경에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얻는 데이터는 기껏해야 창세기 4장 이후 세상이다. 이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연과학이 근거하고 있는 전제인 자연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역시 인정한다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우리는 현재의 지구에서 에덴동산의 위치조차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 창세기 1, 2, 3장의 내용은 자연과학의 잣대로 엄밀하게 판단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불 칼’로 막혀 있는 영역, 그래서 우리가 전모를 파악할 정도로 탐구할 수도, 입을 댈 수도 없는 영역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내 생각에는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범죄 직후 아담, 하와, 뱀에게 말씀하실 때와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직전 사이 어느 때에 에덴동산 밖 세상과 우주는 죄와 사망이 들어온 상황에 부합하도록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만물이 갑자기 늙었다/낡았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급변. 이미 썩음과 쇠하여짐, 죽음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상태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는 어떤 급변. 하나님께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상대적인 것이니, 카세트테이프를 빨리 감기 하듯 그렇게 세상은 빨리 감겼을 것이다. 빨리 감기를 하면 1분도 안 돼서 테이프 전부를 한쪽으로 옮길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40분의 시간이 감긴 것이다.2)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 1장의 창조의 틀이 폐기되거나 말소된 것은 아니다. 땅과 하늘, 만물은 여전히 땅, 하늘, 만물이다.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되 급격하게 늙어버린/낡아버린 세상. 즉, 죄와 사망이 이미 들어와 다스리고 있는 세상. 그러나 어떤 별다른 세상이 아니라 여전히 첫 창조에 속해 있는 그 세상.3) 그곳으로 아담과 하와, 아니, 만물은 쫓겨난 것이다. 에덴동산은 이제 인간의 경험과 관찰을 벗어난 곳에 있게 되었다. ‘있던 것’인데 경험되지도, 관찰되지도 않으니 자연주의적 틀로는 ‘신화’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창세기 1, 2, 3장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이 들어오지 않은 우주’를4) 자연주의적 도구와 방법론으로는 경험할 수도, 관찰할 수도 없다. 언어로는 성립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알 길이 없다. ‘땅과 하늘’, ‘세상’으로 부를 수는 있지만 우리가 지금 아는 땅과 하늘, 세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에덴동산과 창세기 1, 2, 3장의 내용을 신화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실제 일어난 일로 믿는 것은 하등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1. 중요한 것은 24시간이든, 1000년이든, 아니면 그 이상의 세월이든 창조의 하루에는 어둠이 결코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루는 낮이며, 이 낮은 어둠이 없는 때이다. 어둠은 낮과 낮을 구분하는 경계로 작용하는데, 이렇게 낮(빛)과 낮(빛) 사이에 끼여서 꼼짝 못하는 어둠이 바로 ‘저녁’이다. 그러니까 창조의 하루가 예를 들면 1000년이라고 하면 그 하루에 365×1000개의 낮밤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 1000년의 세월 동안 긴 낮 한 번과 잠시의 저녁 한 번만 지나간다는 뜻이다. ↖︎
  2.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빛의 (절대) 속도를 변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물론, 이는 자연주의적 틀 안에서는 부활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창세기 1, 2, 3장의 내용으로 보면, 하나님은 빛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추론하는 것은 부조리하지 않고 합당하다. 그러나 이 일도 위에서 언급한 급변 이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
  3. 범죄 이후 세상은 처음 의(義)의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상태가 된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내 포인트다. 즉,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후 에덴동산 밖 땅에 들어서자마자 유예 없이 그 즉시 죄와 사망 아래 놓이게 되었을 것이다. 온 우주는 급격하게 이에 맞게 세팅되었을 것이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창 3:17).” ↖︎
  4. 그러나 이는 소위 ‘영적인’ 현실이 아니다. 엄연히 물질로 된 세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