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는 분명, 신학적 보편성이 존재한다. 혹자가 말하듯 그의 신학은 동방 교부의 신학과 완전히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르다는 결론은, 내가 보기에는 무리한 판단이다.
특히 그가 성경을 봐나가면서 진행하는 여러 방법론 중, 생각을 정리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그의 존재론적 방법론이다. 하나님을 최고선(最高善)으로 두고 위계를 설정하는 식의 방법론은, 한편으로는 분명 고대 철학 및 수사학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적 헬레니즘화’라고 과격하게 배척할 것은 또 아니다. 소위 ‘비기독교적’ 방편은, 그가 ≪기독교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관해[De doctrina christiana]≫ 등의 자기 저서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듯이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도움되는 딱 그만큼만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완벽하지 않다. 나는 그의 견해 중 동의하지 않는 것이 꽤 많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이 비판하는, 존재론적 위계를 명시적으로 신학적 사고 전개에 활용한 것은 서방 신학에 널리 채택되었고, 이는 나름 신학적 사고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나는 본다. 신플라톤주의 색채를 탈색시킨 상태에서 없음/있음으로 위아래를 따지는 방법은 특히 신론(기독론 포함)과 은혜론을 이해하는 데에 강력한 효율을 발휘한다. 물론, 은혜나 신성을 물화(物化)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지만 말이다.
중세의 스콜라주의는 애초에 철학이라기보다는 교습 방법론인데, 성경과 고대 교부의 수많은 글을 발췌·인용·비교·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것이다. 교부 시대가 저물고, 역사적 혼란기에 그들만큼의 신학적 생산성이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신학을 처음 공부할 때는 스콜라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한다고 방향성을 잡고 나니, 스콜라주의가 고민하던 근원적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성경의 내용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교부들이 본래 고민하던 주요 문제 중 하나였으므로 중세 학교[schola] 교사들은 이 문제를 계승하는 동시에, 기존 자료를 정리하여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또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성경의 내용 자체를 탐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와 언어를 기반으로 한 논리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색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기왕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존재론적 위계를 따지는 방식과 결합하여 간결하고 효과적인 교습이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중세가 간과한 것은 효율성은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계몽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순수하게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소위 via moderna로 지칭되는 유명론적 흐름은 일탈이 가속화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via antiqua의 절정이었던 13세기, 아퀴나스 등이 활동하던 그 시기라고 나는 본다. 점점 더 스콜라주의는 양손에 쥐고 있던 ‘성경’과 ‘언어/논리’ 중 전자는 거의 놓고 후자만 꽉 쥐었다. 점점 더 복음은 딱 떨어진 시스템이 되어갔고, 성경은 그 시스템의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고 궁극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일에 국한되어 요청되고 동원되었다. Sola Scriptura는커녕, tota Scriptura도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스콜라주의가 그야말로 스콜라 ‘철학’이 된 것이다.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성경을 가져오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성립이 된다는 뜻이리라.
목회를 하니 내가 이해하는 것과 회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별개의 작업임을 알게 되었고, 전달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언어와 논리의 한계를 탐구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오직 성경, 전체 성경을 외치면서 교리 문답(카테키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이는 사실 스콜라주의 방법론의 초기 버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테키즘 활동이야 교회의 유구한 전통이지만, 성경의 내용과 언어를 별러 성경에 등장하는 개념을 알맞게 배치하고 설명하는 것은 스콜라주의 방법론의 근본적인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작업이 ‘교파’의 경계선을 형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종교개혁의 결과로 생긴 교파들은 자기들 신앙을 포지셔닝하는 데에 신앙고백서뿐 아니라 교리문답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는 중세 스콜라주의가 밟았던 동일한 오류로 빠질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 성경을 직접 깊이 묵상하는 대신에 공인 받은 체계를 습득하여 익숙해지는 것을 신앙의 성숙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은 분명, 성경을 직접 대면하고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고 자란다. 종교개혁자 중 스콜라주의 방법론을 이용하는 사람이 다수였던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것을 중세로마교회의 ‘전통’ 중 하나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도 다수였던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