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 2003

매력과 탐심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일단 서론으로... 예전에 쓴 글 중 원래 본시이의 글들 게시판에 있던 글부터... 전 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엄청 좋아해서,,, 이번 여름에 또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역시 매번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명작이고 영감을 주는 소설입니다…]

홀로 아리랑을 한 기간, 즉 싱글로 열심히 산 기간이 이제 어언 28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內外間 所謂, '結婚'이라는 重且大한 人倫之大事를 質問 및 壓迫하는 知人들이 增加하고 있나니, 嗚呼, 痛載라...

지금보다 좀더 어릴 때, 즉 이 몸 아직 진짜 학생이었을 때 연애를 제대로 해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로 남는다. 딱히 이 몸이 좋다고 달려드는 여학생도 없었지만, 연애를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그리고 좀덜 신중했으면 못할 것도 없었으려니 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리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 어떡하랴. 이 몸의 지나친 신중함과 소심함과 능력 없음을 탓할 밖에...

이제,,, 이른바, '결혼적령기'에 들어서고 나니, 매력과 탐심이 다같이 발동하는 것을 주체치 못하겠다. 탐심은 사실, 인격에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탐심의 목적어는 철저하게 '사물(물건)'이다. 요즘 들어 많이 느끼는 것은, '내가 한 인격을 얼마나 제대로 사랑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어떤 매력'을 느낀다. 문제는 그 '어떤 매력'도 탐나고 또 다른 사람의 그 '또 다른 매력'도 탐난다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예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 중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사람은 나 빼고 별로 만나보질 못했다...^^)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했지만, 요즘 들어 자꾸 이 영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약간 헷갈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만든 그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지... 일단, 전자로 생각하고 진행하겠다.) 그는 시체를 모아서 사람을 만든다. 머리는 당대의 두뇌인 자신의 스승의 것으로, 몸은 또 다른 사람의 것으로... 그렇게 좋은 것만 모아 만든 사람은 그 좋은 것들의 집합으로서의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흉칙한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가장 소중히 하는 애인을 죽인다. 박사는 괴물을 만든 기술을 사용하여 애인을 살려낸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본 살아난 애인은 소리를 지르며 자살한다. 그 애인은 스스로의 '비인격성'을 거부해 버린 것이다... 결국,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은 '시체'로 만든 괴물이었다. 시체들이 나름대로 매력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시체는 시체일 뿐이다.

쩝, 한 사람을 그 사람의 부분이 아니라, 온전한 인격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더욱이, 인간을 상품화, 물상화시키는 이 미친 시대에 한 사람을 온전히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내게는 많은 사람들, 특별히 자매들이 동강난 시체로 다가오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내 안에 한 괴물을 만들어 놓고 그게 내 이상형이라고 마음을 굳히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끌리고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숱한 자매들은 한 인격체라는 것을 나는 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얼마나 많이 난도질하고 있는가...

올해는, 하나님께서 정말 내 존재를 전적으로 실어서 사랑할 수 있는 한 자매를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탐심이 배제된 사랑, 그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많이 보이고, 많이 보일수록 '보암직'한 것은 더 많아지고,,, 그렇게 내 안에서 자라난 탐심들은 시체를 난도질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수술칼이 되어가고 있다... 주님, 긍휼히 여기소서...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이 글을 들여다보니, ‘대상화’ 자체를 너무 죄악시한 듯한 감이 있다. 이 때도 여전히 ‘이념적’이다. 구체적인 ‘몸’을 가진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라면 대상화는 필연적이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다. 매력은 꼭 탐심과만 연결되지는 않으며, 아름다움은 꼭 이념의 차원에서만 전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