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 2024

유럽이나 한국이나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듯하다. 순수한 민주정(民主政)은 근원적인 의미에서는 포퓰리즘을1) 벗어날 수 없다. 공화주의적 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정이 중우정(衆愚政)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론(正論)을 중심으로 정치가 진행되어야 한다. 즉, 논쟁과 설득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론은 개인이 펼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한 정론을 중심으로 그것을 확신하고 그것에 설득된 무리가 펼치게 된다. 이게 바로 정당(政黨)이다. 정당은 정론을 중심으로 민(民)의 선택을 받아야 하며, 자기 정론을 민에게 설득시키지 못했으면 민이 선택한 정론에 승복해야 한다. 즉, 어느 정도의 ‘쿨함’이 요구되는 것이다(예를 들면, 10% 득표했으면 나머지 90%에 대해서는 관용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공화정은 각 민의의 비율에 최대한 근접하게 반영하여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현재 선택받지 못했다고 해서 정론의 근본적인 지향을 바꾸는 것은 민주(공화)정에 위배된다. 이는 정론이 권력욕에 잠식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각기 다른 정론들을 광장에다 전시하는 민주(공화)정의 기본적인 합의는 가장 적당한 정론 선택이 권력 획득보다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에 의해 이번에 선택받지 못했다면 다음 번에 선택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선택받지 못했으니, 민에게 선택받을 만하게 정론을 개조하자고 결정하는 순간, 혹은 상대방 정론을 악마화(=존재 不容)하는 순간 포퓰리즘이 된다. 물론, 세부적인 차원에서 정론을 다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론의 지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개조를 하는 것은 민주(공화)정을 흔든다. ‘국민이 원한다’는 레토릭을 구사하면 대개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각 정론 주체가 ‘엘리트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기 정론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정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민에게 투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권력욕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정론이 선택되는 현실’은 멀어만 보인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내 정론이 적당하지 않다, 오판이었다고 인정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1. 이 글에서는 다수의 폭정부터 인기에 영합하는 중우정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