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 2026

소위 친일파에 대하여

한 여배우가 조상 자랑을 하다가, 증조부가 친일파였다고 ‘범세계적’ 비난을 받고 있나 보다, 나도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한국사의 한 장면이 반민특위 활동의 와해다. 반민특위 때 소위 반민족 행위자들을 단죄했어야 했다. 그 이유는 단죄당하는 당사자들이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반민특위는 와해되었다.

이후 다시금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기에는 역사가 매우 복잡해지고, 좀 더 세게 말하면, 꼬여버렸다. 반민족 행위자의 ‘경계’에 서 있던 다수가 한국전쟁 등을 통해 국가 유공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일제 부역 반민족 행위로‘만’ 처벌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나는 일각의 주장과는 다르게, 반민족 행위자로 단지 의심되거나 지대한 반민족적 과오가 있지 않은 한, 이후 대한민국 국가 유공자가 된 이들은 단지 단죄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하고 기려야 한다. 단지 친일하였다는(혹은 그렇게 의심되는) 사실로 그들이 대한민국에 기여한 업적조차 없는 듯이 하면 안 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일제 때는 친일파 하다가, 미군정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주의자로 탈바꿈한 기회주의자들을 왜 옹호하나? 일리가 있지만, 그러함에도 反김일성-反조선노동당 지향은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받아들이면 옳을 수밖에 없다. 친일파하다가 공산주의-김일성-조선노동당 쪽으로 전향하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다. 그리고 북한이 친일파를 잘 숙청했다는 일각의 확신과는 달리, 조금만 조사해봐도 북한의 숙청 기준은 친김일성이냐, 반김일성이냐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어제의 동지가 김일성 심기에 따라 오늘의 반동이 된다(연안파 숙청 등). 친일파였지만 김일성 따까리 노릇한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살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밈으로 유명한 심영의 생애를 한번 조사해 보라.

반민특위가 와해되지 않고 엄정한 기준에 따라 자기 변호의 기회를 주면서 반민족 행위자를 단죄하고 처단하는 과정이 완결되었으면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 문제의 다수가(전부는 아니라도)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때 나름 깔끔하게 단죄와 청산이 끝났다면, 이후 그들이 공로자로 선 자리에 반민족적 흠결은 없는 사람들이 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와해시킨 쪽의 염려처럼 오히려 국가적 역량은 감소해서 한국전쟁 이후 역사가 더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반민특위가 애초에 기소한 300여명 정도 되는 인원만을 다시 재조사하여 그중 가장 정도가 심한(이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할 능력은 내게는 없다) 사람들만 추려서 확실하게 단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나머지들은 재산 환원, 친일 행적 적시 등의 처분만 하고(즉, 주로 일종의 ‘명예형’ 위주로 처벌하자는 것), 이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할 길은 열어주고. 여튼, 역사에는 가정이 없어서 이런 생각은 그저 상상에 그치지만.

친일파 청산과 나란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공산 부역자 청산이다. 이는 한국이 오랫동안 공안 정국을 유지한 전력이 있어서 꺼내기 조심스러운 말이긴 하다만, 이제는 그 반대 세력이 정권을 잡고 기득권이 되었으니,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대학생 때 진짜 재밌게 읽은 책 중 하나가 이태가 쓴 『남부군』인데, 영화로도 나왔다. 최민식, 최진실 등의 대배우들이 출연했는데, 영화도 무지하게 재밌다. 여튼, 재밌게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이 사람은 분명,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눴고, 이 사람이 몸담았던 빨치산도 군경, 양민들을 다치게 하거나 살해한 게 확실할 텐데 아무일 없는 듯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향한 빨치산은 이전까지의 과오를 불문에 부치고 한국 국민으로 살게 해줬다는 것이다. 나는 이 조치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빨치산 중에도 이후 북한과 내통하거나 일종의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사람들의 행적은, 친일파 행적을 공적으로 적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적으로 적시해야 한다고 본다. 무슨 ‘통일 운동가’ 대접만 하고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에 부역한 행적은 쏙 숨기는 것은 대한민국 유공자인 것만 내세우면서 친일 행적은 은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안 정국 시기에 수많은 사람이 간첩으로 조작되어 피해를 입은 사실은 우리가 꼭 기억하고 끝까지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간첩들, 조선노동당 부역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위 여배우 조상들의 소위 친일 행적은 조금 더 조사해 보고 결론 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정친목회에 명단이 올라가 있는 사실만으로는 반민특위조차 악질 친일파로 분류하지는 않았다고 나는 알고 있다. 약간 경우가 다르지만, 보도연맹에 단지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이유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매일신보 등에 난 기사는 그가 속물일 수 있었겠다 정도의 판단을 내릴 근거는 되나, 반민족 행위자로 판단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고종 독살설은 증명되지 않은 소문이고. 또, 이완용을 치료한 것을 두고 말이 많던데, 아니, 의사가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되지 그러면 외면해야 하나? 군의관은 심지어 적군조차 치료해 준다. 이런 직업 윤리조차 상대화하면 도대체 어쩌자는 뜻인가! 덧붙여, 이완용의 절친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이 반민족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나는 작금의 전세계적인 ‘캔슬’ 광풍이 매우 걱정된다. 이전에는 빨치산 후손이 당하는 ‘연좌제’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친일파 후손은 잘 먹고 잘사는데 왜 이렇냐는 것. 굳이 굳이 이유를 끌어 오자면, 일제 시대는 끝났고, 북한은 여전히 주적으로 우리와 대치하고 있으니 그렇다는 게 당시 대답이었다. 나는 이 대답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긴 되었지만, 빨치산 후손들이 당한 연좌제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 몇 년 동안 소위 ‘토착 왜구’ 운운하면서 ‘일제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계속되고 있다’는 상상적 현실을 대중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즉, 일종의 연좌제의 밑밥을 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결실(?)을 마주하고 있다. 느그 연좌제는 악하고, 우리 연좌제는 선한가? 물론, 제도적인 차별 자행과 대중의 비난을 왜 같은 선상에 놓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면, 빨치산 후손들도 당시 대중적 비난과 따돌림도 당했는데, 이건 문제 없이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