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노아 때 하나님은 사순(四旬), 즉 사십(四十) 주야를 비를 내리사 지면에서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다. 모세는 애굽의 죽음에서 도망하여 광야에서 사십년을 보내야 했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사십주야를 떡도 물도 먹지 못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사십년을 보내야 했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사 사십일을 금식하시므로 마귀에게 시험받으셨다.
노아는 나타나있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 육체의 현실을 사망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삼음으로 영을 좇아 행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 육체와 육체로 말미암은 모든 현실을 사망 아래 두는 하나님의 물심판을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말씀/약속)를 유업으로 삼아 이길 수 있었다.
모세는 혈육(육체)에서 나온 의와 열심(율법으로 말미암은 열심)으로 인해 오히려 정죄당하고 죽은 자가 되어 애굽이라는 현실에서 떨어져 나왔다. 육체의 모든 의와 열심을 부정하는 광야에서 그는 사십년을 보내고 불심판을 이기는(불붙은 떨기나무) ‘여호와’라는 말씀의 능력을 만났다. 시내산에서 율법 역시 자기 육체를 죽음으로 돌리는 사십 주야의 금식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사십년을 금식했다. 육체로 말미암은 생명과 현실을 부정하는 광야... 거기서 그들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육체로는 죽임 당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생명은 어느 능력으로 말미암았는가? 만나, 바로 하늘에서 오는 말씀의 능력이다. 말씀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양식, 그걸 먹고 그들은 살 수 있었다. 육으로는 죽임 당했으나 영으로는 살림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회개의 세례 아래 처하심으로 당신을 물 아래 두셨다. 이로써 노아의 물과 홍해의 물 아래로 예수께서는 잠기셨다. 그리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고 맞바로 하늘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받으셨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물에서 올라오게 한 능력, 세상을 정죄함으로 말미암는 죄사함의 근거가 어디로서인지를 증시(證示)하셔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증시가 바로 사십일 금식 시험이다.
금식은 육의 양식을 끊음으로써 육의 생명을 부인함이다. 이로써 금식하는 자는 자기 육체에는 생명이 없음을 드러낸다. 이렇게 드러난 자신의 죽음... 이 죽음을 보고 탄식하며 (침륜에 빠지는 게 아니라) 눈을 들어 생명의 근원이신 분을 보는 게 바로 기도다(아래 글 ‘렉시오 디비나에 대하여’를 참고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금식하셨다. 사십일... 말이 쉬워 사십일이지,,, 아무리 예수님이라 해도,,, 사십일 금식하면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땅으로 착 붙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눈앞에 죽음이 스멀스멀 일어서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딜 보고 계신가? 예수님의 시선은 예수님의 시선과 철저하게 엇갈리는 한 다른 시선을 통해 확인된다. 떡 만들어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만국을 다스려라... 마귀의 시선이 향하여 있는 곳,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내려 한 그 생명의 근원은 그저 하늘 아래 땅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 현실을 적절하게 지탱해주는 신화의 체계, 혹은 종교적 카리스마, 권력... 노아의 때 시집가고 장가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던 그 사람들처럼,,, 모세의 때 광야에서 고기를 달라고, 애굽의 고기 가마로 다시 데려다 달라고 울분을 토하던 그 사람들처럼,,,
마귀의 자식들(독사의 새끼들)은 아비 마귀와 같은 말을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역시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떡과 카리스마(종교적 권위), 정치 경제적 권력을 위해 이용했다. 시종일관 예수님을 자기들의 틀 안으로 끌어넣으려 했으나... 예수님, 끝까지 육체를 부인하시는 길을 가셨다.
그렇다. 사순절. 사순절은 신화적인 ‘통과제의’가 아니다. 로보트 태권브이가 격납고 들어있다 나오면 다시 깔끔한 새 로보트가 되어 나오는, 뭐 그런 기간이 사순절이 아니다. 모세가 사십년 숨어서 무공을 연마하다 강호에 ‘짠~’ 하고 등장하는, 그런 무협지 같은 사순절은 가라. 금식은 결코 내공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시험 받는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핑계치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험은 받지만,,, 반드시 마귀를 만난다는 게 문제다. 예수님도 만났는데 우리가 피할 수 있으랴... 마귀는,,,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신성을 땅에 속한 생명과 풍성함이라고 사기 치는 ‘그놈 목소리’다. 목소리... 어떤 목소리든, 달콤하든, 엄숙하든,,, 이런 내용을 말한다면,,, 그 외모가, 족보가, 지위가,,, 제아무리 (광명의) 천사라 해도,,, 아니 그리스도라 해도, 하나님이라 해도,,, 마귀다.
[사실, 이놈이 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육체 안에 있다(롬 7:20~23). 죄, 바로 그놈이다. 세상의 영, 마귀의 목소리와 튠(tune)이 딱 맞는 그 목소리... 복음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율법이 아니고서는 '나'는 이놈을 '죄'로 부를 수 없고,,, 이놈이 내 육체 안에 거하기에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여 죄의 몸이 멸하여지지 않고서는 이놈의 종노릇을 벗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마귀를 사용해서 걸러내심으로써 하나님의 참 자녀를 얻으시는 게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이다.
그렇다. 사순절. 인생은 그 자체가 사순절이다. 광야에서 인생은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육에서 육으로,,, 흙에서 흙으로,,, 이래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육에서 죽고 영으로 거듭 나고,,, 흙에서 주의 영을 받아 산 생명이 된 자, 그는 영원히 거한다. 세상을 정죄하고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과 함께 죽임 당하고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들, 사순절, 십자가, 부활의 자리에 이른 자들, 이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자, 참 사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