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3, 2011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단상

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프로이트의 명명이 잘 이해가 안 됐었다. 다음은 위키백과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설명이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머니를 손에 넣으려는, 또한 아버지에 대한 강한 반항심을 품고 있는 앰비밸런스적인 심리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 심리 상황 속에서 볼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적인 욕망을 그리스 비극의 하나 '오이디푸스'(오이디푸스 왕)에 빗대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오이디푸스’는 몰랐다고는 하지만, 부왕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이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분명, 이오카스테가 자기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했다. 단지 ‘자기 어머니와 결혼했음’을 가지고 위와 같이 설명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그리스 신화 중 하나가 오이디푸스 신화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펀 이 신화의 줄거리 요약이다.


부어 오른 다리
'부어 오른 다리'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났다. 왕은 아내로부터 태어날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이 태어나자 굵은 못으로 아기의 발꿈치를 뚫어 키타이론 산에 버리게 했다. (아마도 빨리 죽도록 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죽은 뒤 그 망령이 걷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테베의 양치기는 그 아기를 코린토스의 양치기에게 넘겼다. 양치기부부는 아기를 코린토스왕인 폴리보스한테 데려갔고, 아들이 없던 왕은 아기를 양자로 삼고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장
오이디푸스가 어른이 되어 어느 연회에 참석했을 때, 그는 자기가 폴리보스의 친아들이 아니라 사생아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진실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신탁을 물으러 갔다. 그러자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고 했다. 신관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델포이에서 추방했고, 그때까지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를 친부모로 믿고 있던 오이디푸스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코린토스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보이오티아로 통하는 길을 택했다.

어느 십자로에서 그는 마차를 타고 있는 낯선 사나이 (친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이었으나, 오이디푸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를 만났다. 마부가 길을 비키라고 했지만 오이디푸스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마부는 수레바퀴로 오이디푸스의 발을 치면서 그대로 돌진했다. 더구나 마차를 탄 사나이는 옆으로 지나면서 오이디푸스를 채찍으로 때렸다.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도망친 하인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일행을 모두 죽여 버렸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오이디푸스는 여행을 계속하여 테베까지 오게 된다.
그때 테베에서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과 괴물에 대해 신탁을 묻기 위해 델포이로 가던 왕이 살해되어 국민모두 슬픔에 빠져있었다.
테베의 여왕은 스핑크스를 없애는 사람에게는 여왕을 아내로 맞고 테베의 왕위를 바치겠다고 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처치하기 위해 찾아 갔다.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뚱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괴물로,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인간을 잡아먹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인간' 이었고,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스핑크스를 처치한 오이디푸스는 여왕과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되었다. 그는 지혜롭게 나라를 통치해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 어머니이자 아내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 그리고 두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태어났다.

비극, 그후...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 된후 계속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자 델포이 신탁에 묻게 되었는데, 결국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과 그가 저지른 일들이 밝혀졌다.
여왕은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미쳐 자기의 눈을 후벼 빼고 테베를 뒤로하여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는 모든 사람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버림을 받았으나 그의 딸들만은 그를 충실히 보살폈다.

마침내 비참한 방랑생활을 지리하게 계속한 후에 그의 불행한 생애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가 방랑생활을 할 때 끝까지 시중을 들어준 여인은 기가 막히게도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일반적으로 이 신화의 주제를 ‘운명은 힘이 세다’ 정도로 말하곤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난 이 ‘운명’이라는 걸 조금 찬찬히 곱씹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운명은 분명, ‘태어날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라는 신탁에 의해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오이디푸스가 자기 부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실현된다. 그러나 이 운명의 시작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탁에 의해 자기들 현실의 질서[코스모스]와 자기들 육신의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해서 아기 오이디푸스를 발꿈치를 뚫어 갖다 버린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선택이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의 궁극적인 ‘힘’은 ‘혼돈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너무나 ‘법칙적’이기에 신의 위치(신탁)까지 오르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자식 사랑까지 극복하게 만드는 이 두려움. 잔인하게 갓 태어난 자기 자식의 발뒤꿈치까지 스스럼없이 뚫고 내다버릴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을 먹고 운명은 신의 지위까지 격상된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곧 ‘부어 오른 다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신탁은 양부모인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에게서 오이디푸스가 떠나게 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를 떠나게 하는 힘 역시 ‘혼돈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오이디푸스를 갖다 버리게 한 것도, 오이디푸스가 폴리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를 떠나게 한 것도 모두 이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전자에게서는 자식조차 내다 버리는 매정함으로, 후자에게서는 근친상간과 존속살해를 피하고자 하는 효심으로 나타났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친아버지’를 이제 ‘죽일 놈’으로 만난다. 라이오스의 마지막은 오이디푸스를 자식으로서 만난 게 아니라 자기 생명을 빼앗는 살인자로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수레바퀴로 오이디푸스의 발을 치면서’ 지나가려 했던 라이오스는 자기가 ‘발을 뚫은’ 그 아들에 의해 죽임 당한다. 발을 뚫어 내다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라이오스가 살해된 뒤, 이오카스테가 홀로 다스리던 테베는 ‘인간 때문에 혼돈이 임한 도시’였다.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뚱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는 그 자체로 혼돈이었으며, 그 혼돈의 답은 ‘인간’이었다. 그 혼돈은 인간의 생명을 요구하는 괴물이었다. 딱 규정되지 않는 스핑크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지혜’로 인해 이 괴물의 혼돈이 드러나게 되었다. 스스로의 혼돈이 밝히 드러나자 그는 수치심을 느끼고 자살한다. 이로써 테베에 다시 질서와 생명이 임하고 이 보답으로 오이디푸스는 아리따운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의 코스모스적인 지혜의 눈이 스핑크스라는 혼돈을 이길 답을 봐 내었기에 질서와 생명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사실은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보다 더 흉악한 혼돈의 괴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는 질서 중 가장 근본인 혈통의 질서를 어지럽혀, 스스로가 ‘아들이기도 남편이기도 오빠이기도 한’ 존재가 되었으며, ‘어머니이기도, 아내이기도 한’ 여자를 만들어냈고 ‘딸이기도 누이동생이기도 한’ 여자들과 ‘아들이기도 남동생이기도 한’ 남자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가 꾸린 혈통, 그가 생산해낸 생명들 자체가 혼돈이었던 것이다! 다시 테베에는 혼돈과 죽음이 임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친아버지를 못 알아본, 자기 친어머니를 못 알아본, 그러나 스핑크스를 이길 지혜를 보았던 눈을 폐(廢)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무엇일까?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인간의 육신이 보는 지혜와 코스모스, 그리고 그가 취하는 생명은, 그 육신 안에 있는 죽음과 혼돈을 결코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불가능함이 바로 운명의 정체인 것이다. 따라서 운명은, ‘앞으로 이러저러한 일들이 확실히 일어남’의 차원에서 규정되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육신의 진실’, 이 바꿀 수 없는 진실에 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진실을 근거로 운명의 모든 예언들과 법칙들이 정립되는 것이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