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김교신 선생, 함석헌 선생 등은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김선생과 함선생은 우찌무라 간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화했다. 우찌무라 간조의 ‘일본적 기독교’를, 전자는 ‘기독교’에, 후자는 ‘일본적’에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함선생이 나중에 힌두교까지 긍정하게 되었고, 또 퀘이커가1)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일본적’에 방점을 찍었다는 게 의아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함 들어봐라.
김선생이 우찌무라 선생을 스승으로 생각했던 것은 확실하다. 많은 글들에서 그에게 대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향하여 우찌무라의 제자니 어쩌니 하며 뻔한 말로 주제 넘는 비평이 없었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배웠노라고 공고할 필요도 없이 오직 유일한 스승님 예수만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2)
그는 신앙 자체를 우찌무라선생에게 배웠고, 무교회적 입장은 그 신앙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찌무라가 ‘일본적’이라는 말로 요약한 내용을 김선생은, 무엇보다도 교회론적으로 이해했다 — 서양의 제도 기독교를 거부함. 이러한 거부는 그 자체로 선교-전도적 입장을 함의하고 있다 — 서양의 제도 기독교적 신학이 아니라, 우리(일본) 언어와 사상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전하겠다. 이렇게 ‘기독교 혹은 복음 자체’와 ‘그것을 담아내는 틀로서의 교회 및 신학’을 별개의 실체로 보는 게 무교회의 근간이기도 하려니와, 김선생은 이러한 무교회주의를 ‘보편적’ 입장에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성서와 조선’을 병치시키는 것 역시 민족주의적 관점보다는 보편적 관점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우찌무라선생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 “조선은 일본 이기는 기독 국가 돼라.” 이것은 우찌무라선생의 ‘일본적’이라는 말이 결코 통상적인 의미의 민족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김선생의 우찌무라선생 수용은 우찌무라선생의 본의를 제대로 파악한 수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함선생은 좀 다르다. 함선생은 ‘일본적’이라는 말을 ‘조선적’이라는 말로 바로 대체시키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조선’은, 나중에 나름의 보편화 과정을 겪는다. 우선은 ‘동양’. 그는 ‘일본’의 무교회주의를 넘어 중국, 인도까지를 자기 안에 담아낸다. 결국 기독교는 ‘서양’과 동일시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는 동서양을 자기 안에서 다 회통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한편으로는 그의 스승 유영모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지만, 그 스스로가 자기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행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 복음과 그것의 절대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김선생과는 달리, 최종적으로 함선생은 ‘종교’라는 보편적 실체를 붙잡고 종교다원론자가 된다. 그가 1942년 수감 생활을 회상한 아래의 글을 함 보자.
감옥을 나는 인생대학이라고 합니다. 학교나 사회에서 못배우던 것을 거기서 많이 깨닫게 됩니다. 거기서는 밖의 선생이 아니고 제 속에 있는 참 선생이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간 경험은 여러번 있습니다. 모두 다 나는 나 노릇 하잔 죄로 이것이 네 번째 아직도 세 번 더 있는데 이때에 얻은 것이 가장 많습니다. 불교 경전을 보게 됐고, 노자, 장자를 더 읽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신비적인 체험도 얻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교는 궁극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소감은 조금 넓은 감방 뿐이지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국이라는 혹은 집이라는 감방 속에 가만 앉아 역사의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한 내 생각을 간추리면 이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국경선의 변동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려는 세계혁명의 시작이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가관이 달라져야 한다. 대국가주의시대(大國家主義時代)가 지나간다. 세계관이 달라지고 종교가 달라질 것이다. 아마 지금과는 딴판인 형태를 취할 것 아닐까? 종교의 근본 진리야 변할 리 없지만 모든 시대는 그 영원한 것의 새로운 표현을 요구한다. 각 시대는 제 말씀을 가진다. 장차 오는 시대의 말씀은 무엇이며, 누가 받을까? 새 종교개혁이 있기 위해 이번도 새 학문의 풍(風)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역시 과거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고전(古典) 연구가 필요하다. 그 고전은 어떤 것일까? 서양 고전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다 써먹었다. 그럼 동양 고전을 다시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거다. 막다른 골목에 든 서양 문명을 건지는 길은 동양을 새로 맛보는 데서 나올 것이다.” 이것은 아주 막연하고 조잡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중에도 나는 초점을 새 종교에 두고 줄곧 그 생각만 했습니다. 기성 모든 종교는 지금의 국가주의와 너무 깊이 붙었기 때문에 거기서 손을 떼고 나오기가 매우 어렵고 낡은 문명과 함께 역사의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해방이 갑자기 와서 전날에 나를 보고 “저 사람은 감옥 가는 것이 일”이라고 하던 민중에 이끌려 임시 자치위원회 회장이 됐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평안북도 임시정부의 교육부장의 책임을 한때 맡기도 했습니다. 내게 맞지 않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정치적 공백기에 사회 질서를 위해 부득이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소련군 감옥에 두 차례나 들어갔고, 나중엔 그냥 견딜 수 없어 남한으로 넘어왔습니다. 와서는 무교회 친구들을 만나 그들의 협력으로 일요종교강좌를 열어서 1960년까지 계속하면서 내 생각을 발표했고, 혹은 글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많은 공명자를 특히 대학생층에서 많이 얻었습니다. 그 대신 교회에서는 이단이라 낙인을 찍었고, 무교회 친구 사이에도 차차 소외하는 기미가 있었습니다. 이유는 주로 “십자가 소리를 아니하고” “기도를 아니한다”는 것과 너무 동양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는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몸소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요, 기도는 아니하는 것이 아니나 다만 공중기도는 형식과 인간끼리의 아첨에 지나지 않는 일이 많으므로 될 수록 삼가는 것 뿐이며, 동양적인 것을 배척하는 데 대하여는 나는 확신을 가지고 싸웁니다. 대개는 유교, 불교의 깊은 뜻은 알지도 못하고 그저 교파적인 좁은 생각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3)
함선생의 힘이자 매력은, ‘조선민족됨’의 원죄를 위와 같이 보편적 경지로 승화시킨 데 있다. 당하기만 하고 얻어맞기만 하는 조선민족, 그리고 서양에게 착취당하고 무시당한 동양인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입구로 하여 보편적인 정체성을 획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억압당하지만 그 억압을 매개로 보편성을 획득하는 실체를 나중에 그는 ‘씨알’이라고 불러 자기 사상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물론, 난 김교신 선생 손을4) 들어주는 쪽에 서있다.5) 더불어, ‘신학의 토착화’에 있어서 김선생과 함선생은 많은 시사점들을 던진다. 단지 ‘서양 것’이라고 배척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서양 내지는 그 누군가의 아류가 되지도 않으면서도 어떻게 이 땅에서 지금 복음을 전할 것인가? 어떻게 성경을 한국에 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을 어떻게 성경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지금 우리가 여기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리라.
이 글도 보라.
- 퀘이커도 성경의 권위를 좀 더 존중하는 보수적인 그룹, 그리고 성경의 권위를 완전히 배척하는 그룹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신앙적 경향이 다양하다. 함선생이 속한 그룹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운 쪽이었을 것이다. ↖︎
- 건드리지 말라, 성서조선 제 136호. ↖︎
- 함석헌, ‘나는 어떻게 퀘이커가 됐나.’ ↖︎
- 이 글도 참고하라. ↖︎
- 무교회주의 자체는 교회론적으로, 직분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교 복음과 교회 및 신학 그리고 신조는 별개의 실체라고 보는 것은 개혁자들의 근본적인 주장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걸 부인하면 천주교와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 고백적 입장이 교조적 폐쇄성을, 제도교회를 긍정하는 것이 제도주의적 교회관의 긍정을 뜻해서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벗어나게 된다. 신조와 제도적 직분을 부인하기에 무교회주의를 수용할 수는 없지만, 신조와 제도 역시 성경 주석의 결과로 도출된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조에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교회에 비판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종교개혁 자체, 개신교 원리 자체에 반한다는 것을 항상 상기하여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