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3, 2011

하나님은 우리와 예수님을 똑같이 사랑하시는가

1.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

1.1.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에 독생자를 주면 세상이 독생자를 영접하기는커녕 죽일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보다 세상, 즉 우리를 더 사랑한다는 뜻이다.

1.2.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 “제 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마 27:46-50).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 이상의 말씀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을 불렀는데 하나님이 구원 안 해주셨고, 우리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신다는 게 이로써 분명해진다.

2.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

2.1.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품 속에 있던 분이시고 독생자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연히 예수님을 우리보다 더 많이 사랑하신다고 할 수 있다.

2.2. 니케아신경에서도 밝히 말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시다. 사랑은 자기와 같을수록 더 진하게 발휘된다. 게다가 하나님과 인간 중 하나님이 더 우월한 존재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게 분명하다.

3.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6-28).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1:20-23).

4. 이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하나되게 하셔서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에게로만 향한다(마 3:17, 17:5, 벧후 1: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아들뿐이다. 복음 역시 이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롬 1:2, 히 1 등). 하나님은 이 아들을 기름부으심으로써, 즉 부활시키심으로써 이 아들을 택하셨다는 것을 인치셨다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은 독생자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혹은 자녀들, υἱοί]’이 된다는 사도의 말씀을 읽는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 하나님의 독생자’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뜻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 구절의 계속 이어지는 내용에서 밝히 드러난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와 합하여 있다’는 것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뿐이라는 것과, ‘많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양립불가(兩立不可)하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합함, 하나됨은 ‘세례’를 통해서이다. 세례는 ‘장사됨’(롬 6:4, 골 2:12)이다. 즉, 옛 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믿음의 결과는 옛 사람이 죽고(부인되고) 새 사람, 즉 그리스도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스도로‘써’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로‘서’ 다시 산다. 이러한 사태를 사도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사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강력히 천명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신부’, ‘지체’의 비유도 모두 이러한 ‘하나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그리스도는 머리, 교회는 몸, 그리스도는 신랑, 교회는 신부. 모두 ‘합함’ 내지는 ‘연합’을 드러내는 장치들인 것이다. ‘많은’ 우리는 하나님의 한 아들,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반문》 우리가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삼위 하나님 중 제 2위인 성자(聖子)가 된다는 말인가?

답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품속에, 그리고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따라서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독생자다. 그러나 많은 우리는, ‘입양’된다(롬 8:15, 23, 9:4).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다(롬 5:10).

반문2》 위의 ‘하나됨’에 대한 설명은 ‘동일(同一)’과 ‘단일(單一)’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답변2》 그렇지 않다.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손가락이 ‘열 개’이지만, ‘아프다’는 것을 기준으로 열 손가락 모두 차별 없이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동일이나 단일로 환원할 수 없는 사태다. 하나님 눈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은 무리들과 그리스도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사랑이 아니라 바로 창세 전부터 독생자를 사랑하시던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위에서 인용한 다음의 말씀이 이것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차별을 두신다면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분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분이 아니시다(롬 2:11).

1.1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고난 받게 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사태다. 고난 받게 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2, 6-8).

1.2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한다.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외침을 외면하신 이유는 예수님을 ‘나무에 달려 율법의 저주를 받은 자’로 확정짓기 위해서였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가 ‘율법의 저주’, 즉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짐’을 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속량되지 않는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바, ‘고난 당하게 하심’에 해당하기에 ‘사랑하지 않으심’과는 별개의 사태다. 또, 인용한 롬 10:12-13에서 ‘주의 이름’은 예수님의 저주받으심과 부활을 근거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1.2는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2.1에 대해서는 4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독생자를 사랑하시던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해야 한다.

2.2에 대해서는 4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분이라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