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8, 2012

복종과 구속

아내와 함께 산 지 몇 년의 세월이 되니, 이제 아내의 마음속이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내 마음이 들여다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일찌감치 파악을 했고. ‘주시자(注視者)’는 항상 구속(拘束)하는 자다. 서로를 주시하면서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관계, 이게 함께 사는 관계일 것이다. 부부는 이 관계 중 가장 극단에 서있는 관계일 것이고. 그도 나에게 복종하고 나도 그에게 복종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 그말고 그에게 복종하듯 복종하는 사람이 생기면 깨지는 관계, 오직 그에게만 해당되는 복종이 나에게 있어야, 오직 나에게만 해당되는 복종이 그에게 있어야 설 수 있는 관계.

예전에는 가끔 나를 구속하는 존재(= 아내)가 새삼스럽게 자각이 되어서 짜증이 났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를 구속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은 서로가 영원히 타자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부부’라는 관계로 맺어진 이상 서로에 대한 이 타자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서로 들여다보는 관계’의 묘미는 다른 데 있다. 늘 들여다보기에 내것이 아니지만 익숙해진 상태, 그래서 마치 내것같은 상태. 또 기꺼이 들여다보게 해줌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것이 되어감. 어쩔 수 없는 타자성을, 서로 들여다봄으로써 이겨나가는 관계가 부부다. 그가 많이 들여다볼수 있도록 많이 열어주는 것이 부부관계의 관건인 듯하다. ‘갈수록 모르겠다’는 것은, 한편으론 많이 열어줘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오랜 세월 열어주지 못한 곳이 서로에게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갈수록 모르겠다’는 말을 전자의 의미, 즉 ‘갈수록 새롭다’의 동의어로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한용운 선생은 연애 혹은 결혼 생활을 해보신 분이다. ㅎㅎㅎ ≪님의 침묵≫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