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은 어떤 사회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며느리가 희생양이 될 때가 많다. 기존 집안의 질서를 바탕으로 하여 볼 때, ‘들어온 사람’인 며느리는 가장 그 질서에 이질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질적이기에 언제든지 ‘부정한’ 사람, 더러운 사람, 순수하지 못한 구성원이 될 수 있고 그 질서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는 죄책(원망, 분노, 비난 등)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그에게 모든 짐을 지우고 그만 정죄하면 카오스는 다시 코스모스가 된다.
그러므로 희생양의 필요조건은 부정하고 더럽다고 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즉, ‘정당하게’(이에 더해 ‘보편적으로’) 비난하거나 깎아내릴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 사람들의 양심과 자의식을 다치지 않는다. 이러한 정당함과 보편성은 질서와 체제가 뒷받침해준다. 그러하기에 이 질서는 권위와 세월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질서가 없다면 구성원들이 말들을 통해 만든다. 당을 짓고 수군수군하며 권위를 구축하여 ‘담론’을 형성한다.
일인 혹은 소수의 희생양이 마련되면 체제의 코스모스와 淨함은 지켜진다. 통속적 의미에서의 청교도적 마인드, 즉 스스로의 정함과 의로움을 가장 최고의 가치로 두는 마인드는 항상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일정 부분 자기애적(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