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07, 2018

방언에 대하여

방언의 본령은 사 28:11 이하에 잘 나와있는 대로, ‘서로 못 알아들음’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행 2의 내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행 2의 내용은 결국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준다. 언뜻 이해하기로는 바벨탑 사건을 비롯하여 사 28 등의 구약성경에 나오는 방언은 그저 외국어, 다시 말하면 ‘육에 속한 방언’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행 2의 내용은 이러한 이해를 확실히 반박한다. 왜냐하면 행 2에서 오히려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난 곳을 따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외국어 내지는 사투리를 유창하게 하게 된 것이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방언’으로 알아들었다. 즉, 서로 못 알아들음이라는 장애물이 오히려 해소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밝히 보여주신 것은, 그러함에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는 기이한 사실이다. 자기 난 곳 방언으로 분명히 알아들었는데, 언어적으로는 전혀 장애 없이 알아들었는데 그들은 ‘못 알아들었다.’ 그들은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 즉, 난 곳 방언이라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조차 못 알아듣는 어떤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해도 방언이 되는 어떤 나라의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 2의 방언은 난 곳 방언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난 곳 방언으로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떤 말, 즉 하나님의 큰 일, 즉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방언이 된다. 복음을 방언이 아니라 난 곳 말처럼 알아듣는다면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고전 13~14에 등장하는 방언도 이러한 틀에서 이해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