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름’과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전폭적으로 ‘나’인 것, 내 것, 내 일부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나님이 먼저 만물의 이름을 부르셨다(창 1). 따라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다(19절). 여자는 ‘남자에게서 취한 이’다. 남자의 뼈와 살이었다. 그러므로 남자와 분리되지 않는 존재, 일부분이다. 여자를 ‘남자 앞에 선 돕는 자’(= 마주보며/마주 서서 돕는 자)로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여자’라는 이름이다. 아담이 이름을 부름으로써 여자는 남자와 ‘사이’가 생겨 ‘서로’가 된다. 즉 ‘본래’ 하나였지만 이름을 불러 둘이 되고, 그럼에도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사이가 된다. 이것이 짐승과 여자의 차이점이다. 짐승은 이름을 불릴 수는 있지만, 마주 서서 도울 수 없다. 그러나 여자 역시 ‘맞서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마주보느냐, 맞서느냐’ 택일해야 한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같지만 마주보는 자리일 수도, 맞서는 자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