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보기에 기독교 하나님은 소위 '선신(善神)'이 아니다. 사람의 개념상 신은 자동적으로 선신이 되는데, 기독교 하나님은 (선)신과 교집합은 있어도 부분 집합은 아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악한 면모가 분명히 존재한다.
신 존재 신앙 결단은 사실상 신 존재 진위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다. 무슨 말이냐? 사람들은 존재 여부에 관계 없이 '믿고 싶은 신'이 이미 존재한다. 신이라면 선신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 신은 선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신은 없다, 이 테크를 타는 것이다.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이 이거고, 이거 말하려고 양념, 즉 논거 강화 차원에서 신 존재 증명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실상은 (선)신 자체에 관심이 없고,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학적 무신론의 입장이다. 없는 증거가 충분하다, 이런 무신론은 유신론과 함께 증명의 부담을 지닌다.
본질을 통해 무신론/불가지론이 되는 것을 나는 신 존재 증명이 아니라 ‘신 본질 선택’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다면 '성경의' 하나님이 왜 (선)신에 딱 들어맞지 않은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일성은 이데아적 전제에서가 아니라, 성품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미쁘심이 곧 변치 않으심이다. 이 미쁘심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기초다. 그러하기에 예를 들면 살인(비기독교인 제일 많이 들고 나오는 것)조차 심판 행위로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쁘시기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의 악한 양상에 대응하여 일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 이런 흔적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것을 보고 쿨하게 그런 신은 악하다,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하고 떠나면 그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조차 막아설 수 있는 정당성은 기독교 변증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시다, 이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럼에도 기독교 신앙의 마지막 대답은 ‘사람이 선하다 하든, 악하다 하든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우시다!’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