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 2021

마음, 율법, 행함

율법의 정보는 성경 그리고 본성에 있다. 본성에 있음은 '마음에 써져 있다'라고 표현한다.

(롬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1: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 본성적 쓰기)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 본성적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정보는 '아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아는 것을 행할 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율법의 문자가 마음에 쓰여지고, 마음에 쓰여진 대로 행해지는 것이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율법 및 본성은 하나님을 '알리지만', 그래서 모든 사람(=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은 하나님을 '알긴 하지만' 그 아는 대로 행하지 않는다. 즉,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오히려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렇게 아는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epithymiais twn kardiwn)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때문이다. 여기서 '에피튀미아'와 '에피그라포'의 '에피'를 주의하여 보라. 모두 외부에서 덧쓰이는 것이다. 즉, 가입하는 것이다. 에피튀미아는 일종의 덧붙임, 부가 기입이다. 그리고 마음은 이것을 선하게/좋게 보아 행한다.

그러므로 렘 31:31 이하의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될 때의 마음은 '빈 서판'이 아니다. 그 이전에는 율법이 돌판에만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뜻이 아니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었고, 이는 그들 마음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기록되지 않았는가? 위 롬 1:21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행하는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행하지 않는' 그들은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역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철필로 새로 새겨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다. 마음의 찢김과 쪼개짐 없이는 새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을 새로 새겨야 한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이 전혀 말씀하지 않으신 법인가? 마음에 전혀 없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옛 법이지만, 새롭게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의 '특수함'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외부의 계명들이 마음에 쓰여지는데, 이스라엘의 율법은 여기 '외부의 계명들'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인 것이다. 이방인들의 관습, 법, 도덕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외부의 계명들이 마음에 새겨져 고발하고 변명한다. 이때 이방인의 본성은 유대인의 율법과 본성을 합친 것과 같다. 이방인의 계명들 역시 본성, 즉 자연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율법이 아무리 초자연적, 신적 기원을 가지더라도 사람 안에 들어와 본성이 되고, 마음의 정욕대로 움직일 때 이방인의 본성과 같은 기능을 할 뿐이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가 임할 때, 이스라엘의 율법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특수한 위치를 드러내게 된다. 또, 역으로, 이방인 역시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과 다를 바 없이(유대인 역시 첫 사람 아담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행하여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