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 2026

‘엡스틴 파일’ 공개에 부쳐

개인적으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을 ‘그럭저럭’ 믿는 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요 몇 년 동안 소위 음모론이 전 세계를 강타했는데, 나는 그 디테일에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뼈대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중 하나가 아동 성학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컬트적 희생 제의. 이 둘 모두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들이 빠져들기 쉬운 범죄라고 나는 본다. 전자는 권력을 동원하여 저지를 수 있는 범죄의 극점이고, 후자는 권력을 동원해도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욕망의 극점이다. 

전자에 대한 수많은 증거는 앱스타인 파일에 이미 공개되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후자에 대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이제까지 유행한 음모론은 아마도 엡스틴과 어울리던 권력자들이 수행한 ‘역정보 공작’이 다수 포함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유행하고 통용되는 음모론은 그야말로 ‘음모’론으로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었다. 소위 ‘피자집 습격 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엡스틴 파일에 들어있는 악행들도 더욱 더 ‘우스꽝스럽고 편집증적인’ 음모론의 내용으로 치부된다.

사람이 무엇이며, 사는 보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회한이 마음 한 구석을 스치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