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A.P.R.(필자주 : 이게 뭔지는 불명) 내일을 위해서 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원하시고 진심으로 자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숨어 계시기를 원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 관한 지식을 조절하셨다. 그 결과 그 분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자기에 관한 명백한 표시들을 주셨고 자기를 찾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보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하나님께서 숨어 계시기를 원하셨다는 것.
만일에 종교가 하나밖에 없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종교 속에 분명하게 나타나실 것이다. 만일에 우리들의 종교에만 순교자들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숨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숨어 계시다고 말하지 않는 모든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모든 종교는 교육적인 종교가 아니다.
우리들의 종교는 그 모든 일을 하고 있다. "VERE TU EST ABSCONDITUS."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이사야 45:15)]
음... 일단, 이거부터 시작하자. '하나님의 숨어 계심'. 사실, 이 주제를 이해하는 게, 내 생각에는, 파스칼의 팡세를 이해하는 요체다. 팡세는 단순한 철학 서적이나 교양 서적이 아니다. 철학 이야기를 하든, 수학 이야기를 하든, 인간을 논하든 모든 언설들은 한 방향을 향해 좌우로 정렬해 있다. 그건 바로 '복음 변증/전도'이다. 이 흐름을 잘 타고 있어야 팡세를 제대로 읽어 낼 수 있다. 팡세처럼 단편들로 되어 있는 글들일수록 '명문'들을 뽑아서 자기 입맛대로 음미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낀다. 뭐, 자유지만, 그렇게 하면 팡세를 자칫 오독할 수가 있다는 거다. (사실, 나도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요즘은 좀 뜸했다...^^)
팡세의 목차를 죽 일별하고 띄엄띄엄 발췌독을 해 보면, 파스칼의 논리 전개 방식이 드러난다. 파스칼은 일단, 현상에서 출발한다. "왜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팡세가 출발한다. (팡세가 복음 변증/전도를 위한 것임을 명심할지어다! 이 물음은 호기심을 위한 물음이 아니라, 전도를 위한 '말건넴'임을 아셔야 할진저...) 여기서 '하나님의 선택'이 문제가 된다. 그럼, 왜 하나님은 선택하셔야 했는가. 그건 인간이 타락해서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그냥 타락한 상태로 놔두지 않으시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길을 주셨다. 그 길이 예수 그리스도다. 반론들이 제기된다. 1. 예수는 그냥 유대교의 혁신세력이 아닌가. 파스칼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구약은 한 메시야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대교 및 율법도 상징일 뿐,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2. 그렇다 치자. 그러면 나사렛 출신이며 요셉의 아들인 예수, 이 구체적인 한 인간이 바로 그 메시아라는 걸 어떻게 확증하는가. 파스칼은 '증인들'과 '증거들'을 들이댄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표적적으로) '증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증인들'이다. 선지자들은 오실 것을 미리 봤고, 사도들은 오신 것을 당대에 봤다. 오실 것도 알려져 있었고 오신 것도 알려졌다. 세상에 있는 종교 중, 그 종교의 창시자를 먼 과거부터 정확하게 '증거'한 증인들이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모두 다 당대에 '갑자기' 출현한 사람들이다. '표적(증거물)'으로 겨루어 보자!!!
아주, 정말,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왜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가... 이것은 '선택의 주도권 문제'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하나님을 선택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는 의인이라 할 수 있다. 피상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게 의인이 되는 길이다.' 근데, 이게 좀 녹녹치 않다.
여기에는 '사랑'과 '생명'이라는 주제가 겹쳐지면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게 '생명'이다. 일단, 하나님을 선택하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선택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즉, '생명을 위해서', 그러나 '사랑은 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파스칼이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혹은 굳이 사랑을 개입시키지 않고 악인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생명을 위해 하나님을 선택할 가능성 쪽으로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러한 악인들이 '의인'이 되는 것을 막으셔야 한다. 즉,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하게 '숨어 계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이유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원래 하나님을 찾을 만한 자가 아니었는데, 하나님을 (생명을 위해서) 구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완벽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나지 않으시는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질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시는 사역이다. 참 공교롭게도 이건 개혁주의 쪽의 논리와 정확하게 반대로 이야기하면서 똑같은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 쪽에서는 '성령의 조명'을 이야기한다. 파스칼은 '(성령의?) 소등?'을 이야기한다. 개혁을 따르면, 하나님은 택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들의 마음을 '밝히셔서' 하나님을 '보게' 한다. 그런데 파스칼을 따르면 하나님은 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한다.
만약에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눈멀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또 어떤 사람들의 눈을 밝혀주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원리로 삼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악인들을 맹목 속에 내버려두시기 위해서, 자기가 나사렛 출신이 아니라는 것도 자기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밝게 보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건강한 자들을 죽게 내버려 두시기 위해서, 죄인들을 불러서 참회시키시고 의롭게 하시고 의인들을 죄악 속에 버려두시기 위해서, 그리고 주린 자들의 배를 채워 주시고 부자들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시기 위해서 오셨다.
예언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가 명백하게 하나님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진실로 숨어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 그는 오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 사람들은 결코 이 사람이 그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는 걸림돌이 되어 여러 사람들이 거기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것 등.
이전 글의 논리가 여기서 그대로 이어진다. 파스칼은 하나님의 숨어 계심을 기독론적으로 풀어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근데, 숨어 계신 하나님이시다! (이거, 루터하고도 비슷한 논리인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시고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라면, '하나님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은 전혀 하나님스럽지 않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은 (심지어 구약을 읽고 있었던 유대인들조차도) 쭉쭉빵빵한 '수퍼맨' 비스무레하다. 모든 영웅들은 '반신(半神)'이다. [이러한 신관념이 선험적으로 형성되는지,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지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연스런' 하나님스러움은 바로 수퍼맨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굿간에서 나셨다. 세가 빠지게^^ 고생하셨다. 기껏 키워 놓은 열 두 제자들에게 버림 받고,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스승을 팔아 먹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능욕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하나도 하나님스럽지 않고 그저 한 명의 패배자의 모습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형상이란다...
실상, 그리스도의 핍박 당함은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스러움을 아래서 거부한 몸짓들이다. 아래의 자생적 하나님스러움을 위의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다. 누가 옳으냐, 그리고 그 옳음은 무엇으로 증명되느냐... 참 하나님이신 성부는 어느 하나님스러움을 택하느냐... 이게 바로 '부활'에서 판가름난다. (성부)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성자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확정하셨다. 세상이 거부하고 죽인 그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셨다!
세상의 지혜가 거부하는 형상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 그래서 나름의 하나님 형상을 갖고 있는 세상의 지혜로는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후줄근한 하나님의 형상은 세상의 후줄근함 속에 감추어져 있고, 세상은 거기에 하나님이 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파스칼은 수퍼맨이었던 마호메트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한다. 마호메트의 길은 '세상의 지혜'의 길이었다...
- 결국 이것은 마호메트가 인간적으로 성공하는 길을 선택하였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적으로 멸망하는 길을 선택하였을 정도로, 그리고 마호메트가 성공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마호메트가 성공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당연히 멸망했어야만 되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정도로 매우 반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