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 2002

꼬심 당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 약 1:13 -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꼬심을 당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꼬실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꼬시는 행위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거나 차디찬 외면을 받았다, 차였다.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은, 예수님 사역이다. 보면 숱한 넘들이 와서 예수님을 꼬셨다. '이러이러한 것만 들어주면 당신은 우리가 인정하는 정통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다.' 주로 바리새인들이 이런 짓들을 했다. 끄끝내 예수님은 꼬심 당하지 않으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다. 맨 먼저는 물론, 우리의 사단, 이 넘이 아주 꼬심의 정화를 보여 줬다.

꼬심은 거래다. '네가 내게 이러저러한 것을 (해)주면, 나는 네게 이러저러한 것을 (해)주겠다'. 이게 꼬심의 기본 구도다. 남자를 꼬시는 여자는 자신의 매력을 미끼로 그 남자(혹은 그 남자의 것 - 재산, 능력, 성품 등)를 산다. 하나님을 꼬시는 자는 자신의 공로와 행위, 혹은 노력으로 하나님(혹은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되는 것 - 구원, 축복, 생명, 젊음, 출세 등)을 산다. "하나님, 출세 시켜 주시면 헌금 이빠이 바치겠습니다!!!" - 전형적인 하나님 꼬심(유혹, 시험)이라 하겠다.

사실, 인간은 '욕망-유혹'이라는 기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욕망이 죄의 어미다 (성경적 죄임 - 도덕적 죄가 아님! - 물론, 도덕적 죄도 포함하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그와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 약 1:15 -] 그러므로 인간 실존은 죄를 지향함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 부른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활동은 꼬심과 거래, 일함, 공로 하에서 이루어지고(이것은 죄 아래 있음과 정확히 동치이다), 정확한 거래의 상태를 인간은 '정의'라고 부른다. 물질적 의미에서든 정신적 의미에서든, 정의는 기본적으로 '거래의 공정성'을 핵으로 한다.

하나님을 우리 거래, 우리의 정의(자기의) 안에 끌어들여 길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꼬심의 근본 목적이다. 꼬시는 자는 꼬심을 당하는 자를 '자신의 몸처럼' 조종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결국, 자신이 만든 우상이 살아 움직이길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우상을 입어 그 우상의 형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을 꼬시는 자의 궁극적인 비전이다. 성경은 거래를 배격한다. 그저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의 일하심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공짜로 주는 선물을 받아라는 말이다. 선물 받으려고 꼬실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너는 아무 보탤 것도 없고 공로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인간이라는 '고귀한 존재'를 모독하는 말이다. 아니,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니!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이렇게 열심이 있고, 이렇게 뜨거운 사랑이 있고, 이렇게 튼튼한 육신이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구원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이제 은혜 갚을 때라'하며 하나님과의 거래를 시작하려 폼 잡는다. '하나님의 큰 일꾼'을 자처하며, 하나님을 꼬신다. "이러저렇게 할 거니까, 복 주이소!" 좀 고단수는 "나는 복 필요 없습니다, 그저 칭찬 한 마디면 됩니다, 아니 칭찬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좋은 일 해드렸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합니당 (겸손, 무욕 ^^V)" 이넘이나 저넘이나 똑같다. 기본적으로 거래의 선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와 긍휼은 엄청난 복이기도 하지만, 일하려 하는 인간에게는 저주다. 삯을 지불하는 순간, 은혜는 은혜가 아니다,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하면서 삯을 지불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확신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온 몸으로 구원의 자리를 이탈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율법은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들음'과 '행위'의 차이가 근본적인 차이다. 들음은 그저 일없이 듣는 거고, 행위는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 상태다. 수동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의 행함은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차원의 행함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공로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꼬시기 위한 미끼 차원이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 좋은 일 해 줬다는 만족감을 얻는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저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차원, 그분을 증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의 스스로의 일에 부여된 허탄한 신화를 벗겨 버리고 담백하게 예수님을 사랑하자.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따라 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열심과 일함으로 이루어내는 모든 짜릿함과 아름다움을 무無로 돌리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우신 주님... 그러함에도, 꼬시지도, 꼬심 당하시지도 않으시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