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 2003

身邊雜記―말과 되바라짐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이것도 작년에 쓴 글...


초등2부(3,4학년)을 맡은지가 어언 9개월로 접어들고 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많은 시행착오를 했고, 하고 있고, 그리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내가 아이 때나 뭐가 다르겠는가. 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신대원에 와서 종종, 이른바 '시골'에서 사역하시는 분, 그중에서도 (나처럼^^) 아동 사역하시는 분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시골보다 도시가, 그 중에서도 서울이 사역하기 힘들 것이라는 거다. 주로 아이들의 상태를 지적하면서.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되바라져'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아이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되바라져 있고, '서울' 아이들이 시골 아이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되바라져 있다, 그러니까 '요즘 서울' 아이들을 맡고 있는 너는 힘들 것이다 라는 게 요지이다. 경험적으로 상당히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왜 서울 아이들이 더 되바라졌을까.

인간은 누구나 소통을 하며 산다. (감각기관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무엇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말한다. 소통이 단절된 인간은 실상,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감각기관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남은 감각을 총동원하여 소통을 하며 산다. 그러나 소통의 '양'은 다 다르다. 어느 사람은 하루에 한 마디 정도만 듣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5초에 한 마디씩 듣고 말한다.

세계는 말덩어리이다. 숱한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살다갔다. 숱한 사람들이 한 마디씩만 말을 남기고 가도 세계는 말로 넘친다. 그러나 사실, 숱한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숱한 말을 남기고 있고 남기고 간다--이게 세계의 현실이며 문화의 원천이다. 한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배운다. 말을 제대로 하게 될 때 그 사회의 성원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대한 말덩어리에 편입된다.

말 안에는 세계가 녹아있다. 말하는 자 안으로 들어오는 세계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말은 다시 세계로 나간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와 말 자체가 같은 실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는 세계이고 말은 말이다. 그렇기에 "세계는 말덩어리"라는 표현은 은유가 된다.

'되바라짐'은 내가 품을 수 있는 세계의 용량을, 밀려 들어와 말이 된 세계가 초과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조그마한 그릇에 물이 콸콸 쏟아져 넘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사실 넘치는 물을 받아내지 못하고 흘려 보내고 있는데, 물을 다 받아 내고 있다고 착각한다. 나에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내 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물의 '양'이다. 많은 물이 내게 쏟아지고 있으면 나는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다. 그러나 물은 내 그릇을 지나서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대견스러워 하는 나, 착각하고 있는 나는 되바라져 있는 것이다.

요즘, 세계는 빨리 변한다. 그러나 이렇게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되었다. 인간은 세상이 시작된 그날부터 되바라져 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세계가 '말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숱한 말을 듣고 자란다. 컴퓨터, 텔레비젼,,, 세계가 온통 말을 한다. 세계가 변한다. 변하는 세계는 늘 '다른 말'을 한다. 아이는 자신이 듣는 말을 내면화시킴 없이, 자신의 배운 말에 대한 묵상 없이 그 말을 습득해 버린다. 그리고 그 말에 있는 깊이나 넓이나 가시에 대한 고려 없이 그 말은 다시 아이에게서 세상으로, 다른 사람에게로 나온다. 되바라짐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아이는 아이인지라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직 작은데, 물을 넘쳐난다. 그리고 넘쳐 나는 물 밑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큰 그릇으로 착각한다.

자연은 천천히 변한다. 그리고 주기가 있다. 그러므로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하지만 항상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따라서 자연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몇 마디만 한다. 같은 말을 한다. 자연에서 자라는 아이는 그 몇 마디 말만 듣고 자란다. 그리고 그 말들을 내면화하고 묵상한다. 아이가 자연이 하는 말의 넓이와 깊이를 알게 될 때, 그 아이의 그릇도 커져 있다. 오랜 침묵을 지나서 아이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적분하는 법을 배운 아이는 이제 세상을 미분하는 법을 알게 된다.

아이에게 가장 큰 자연은 부모다. 부모가 자연이 되어 줘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너무 빨리 변한다. 세계의 변화 속도에 적응하고, 자신의 자식들도 그 흐름에 적응시키는 것이 훌륭한 부모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깊은 눈빛을 가진 아이가 그리운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