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출 32:1-출 32:6)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모세가 하나님께 증거판을 받으러 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24장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뿌린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언약을 깨뜨린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24장에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받아들이고 모세는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러 하나님의 산에 올라간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가르침이 25장부터 나온다. 증거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가르침의 요약이던가 아니면 그 가르침 모두를 기록한 것이었을 것이다.] 25장부터 31장까지의 가르침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성막, 제사장, 안식일. 하나님은 이스라엛과 언약을 맺으시며 언약의 증거로 성막과 제사장, 그리고 안식일을 제시하셨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준다(즉, '하나님의 형상'이다). '거룩', '정결'이 이 언약의 증거들을 관통하고 있다. 하나님은 종되었던 애굽 땅의 신들과 같지 아니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홀로 하늘에 계시고(성막), 홀로 범접하지 못할 분이시며(제사장), 홀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 같이 홀로 일(구원)하신다(안식일).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간 '홀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거룩', 즉 구별됨의 본질이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었다. 이스라엘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 복종을 맹세하고 피뿌림을 당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과 언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을 어떤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32장이다.
그들은 그 신을 바로 '금송아지' 형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상, 그들은 24장에서 '금송아지'와 언약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동상이몽이라 할 만하다. 보되 보지 못하고 듣되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여기까지 그들을 인도하여 내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을 그들이 애굽에서 익숙하게 섬기던 금송아지로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금송아지 형상은 25장에서부터 31장까지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과 완전히 다르다. 이름은 다같이 '여호와'되, 생긴 건 다르다. 여호와는 애굽의 금송아지가 되어버렸다. 여호와도 둘이고 금송아지도 둘이다. 애굽에 하나, 시내산에 하나...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은 여지없이 붕괴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참 모습이 계시되기 위해서 거짓 형상이 공박되어야 한다. 32장은 바로 거짓 하나님을 드러내어 훼파하는 과정인 동시에, 적극적으로는 참된 하나님의 형상 계시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이다. 이 일방성은 인간의 죄악됨(혹은 무능함)을 전제로 한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신지식은 거룩하고 참된 신지식일 수 없다. 인간은 무능하다.
<마 27:19 - 마 27:23>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마 27:27 - 마 27:31>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요 19:19 - 요 19:22>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환영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이것은 시편 118편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편은 '여호와(주)의 이름'으로 오는 인물을 맞아들이는 시편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의 형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이것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위의 본문들이다.
그들은 예수와 바라바 중 바라바를 선택했다. 그들에게는 로마에 대한 반란자 바라바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의 형상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로마를 뒤엎고 이스라엘을 세계 중에 뛰어나게 할 전투적 메시아왕이 그들이 상상하고 있던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세계 중 가장 힘센 나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왕으로 모실 준비가 항상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무력하게 제자들에게 배반당하고 로마의 재판정에 섰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예수가 그들이 기대했던 유형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미련없이 예수 대신 바라바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력한 메시아왕'을 거부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무력한 왕은 그들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을... 그들은 진짜 메시아왕을 죽였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은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다. 그들이 죽인 예수는 진짜 유대인의 왕,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메시아였다. 그들은 조롱하고 모욕하려고 예수께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 팻말을 붙였지만, 이 행동들은 '섭리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을 천명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가시 왕관을 받는) 대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진짜 유대인의 왕은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는다... 그들은 예수를 조롱하려고 가시 왕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라는 왕명을 부여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진짜로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들이 상상한 형상이 현상된 사진이라면,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인화된 필름이다... 아, 이 아이러니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그저 광경을 그리면서 묵상할지어다... 살떨리는 아이러니가 육박해올지니...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조롱하고 죽였다(산헤드린과 로마 법정, 군병들...). 즉, 온 인류는 자기 안에 들어있는 신형상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거부하고 죽임으로써 그를 보내신 자를 부인한 것이다. 결국, 회개란 내 안에 있는 신형상이 그리스도를 죽인 신형상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참 하나님이신 천지를 창조한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으로 그가 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확증하셨다.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에 생명을 주신 이 외에 누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으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것을 실증하고 확정짓는 사건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다. 나머지는 사람이 창조한 신들이다. 그리고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나는 사도신경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금송아지를 섬길 것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땅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바알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아는 자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모르는 자는 심판하신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먼저 아셨다.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그 행사 완전 의로우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