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요즘에 내가, 아니 우리 교단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말이 바로 '회개'라는 단어다. 어딜 가나 회개가 넘쳐난다.
교단이 학교법인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복음병원은 부도가 나고... 자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면 3개월 안에 3자 인수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그리고 이런 일은 명백하게 '누군가가' 개판을 쳤으니 일어난 일이다.
이제 와서 관선이사에 의해 명백하게 드러난 일이지만, 그 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일들, 불법 사채, 불법, 탈법 등이 소문만이 아니었다. 진짜였다. 그리고 우리는 '불신자'인 관선 이사장으로부터 '회개하라'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에게 '회개하라'라는 말은 너무나 레토릭하다. 우리 교단 모두의 죄를 회개하잔다. 우리 모두 잘못했으니 모두 먼저 스스로의 죄를 회개하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 사태에 대해 책임있는 사람들을 규명하고 시정하는 일과 우리 모두가 회개하는 일을 양립할 수 없는 일로 보는가...
다같이 회개하면서 원인 규명과 이처럼 억이 막히는 죄를 저지른 장본일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총대를 메는 사람이 없다. '순교자의 교단'이라고 떠들기만 하면 뭘하는가. 진짜 순교해야 할 때 순교하는 사람이 없다. 책임있는 장본인들은 교단의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어른들'이라는 게 이 사태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리라...
교단에 팽배해 있는 여론은 '복음병원 진상 규명' 움직임을 '계파 싸움'으로 몰아가는 여론이다. 복음 병원 정상화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던 움직임들이 교단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찍힐까봐) 뒷짐지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이러한 움직임을 '계파 싸움'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전형적인 '양비론'의 논리를 펴면서. 지금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다. 근데 '시끄럽게 화평을 깼으니 둘 다 잘못했다'는 식의 논리가 팽배하다. '영적인 것'은 반드시 조용하고 평화로워야 하는가.
'서로를 정죄하는 일'을 그만 하잔다. 물론 그렇다. '정죄[κατακρινω]'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 하나님만 정죄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것을 '판단[κρινω]'은 해야 한다. 정죄는 '지옥-천국'을 가르는 선언이고, 판단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행위다. 지금 우리는 정죄를 판단과 동일시하고 있다. '판단해야 한다'라는 주장들을 '정죄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호도하며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셨듯 형제간 일을 판단하여야 한다. 이 판단을 못할 때 세상이 교회를 판단한다. 지금 고신 교단은 그 일을 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판단 유보'를 외치고 있다. 왜? 찍힐까봐.
고신 교단을 맨 처음 시작한 분들은 한국 장로교회를 '판단해서' 축출당했다. '신사참배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악이다'라는 판단을 공교회적으로 한 것이다. 근데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신사 참배를 하며 교회를 지킨 것도 주님의 일이었다'라는 논리를 내세워 이들의 바른 판단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들을 쫓아냈다. (지금도 고신을 축출한 교단의 후예들은 고신을 '근본주의'라는 식으로 매도하며 신사참배를 융통성 있는 문제로 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신앙 노선에 서 있든, 십계명 중 일계명을 다른 식으로-신사참배를 정당화하는 식으로 해석할 방안은 도무지 없다.)
이렇게 당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아님 선배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희한하게 내부의 교권에 대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무력한가. 왜 우리는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하는가, 아니 하지 아니 하는가. '병원이 어려울 때 돈을 빌려준 것은 병원을 살리는 일이었다'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고이율 사채놀이'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주로 교단의 목사, 장로들이다). 이건 '신사참배 하며 교회 지켰다'라는 논리보다 더 무식하고 엉성하다. 근데 이게 먹혀든다!
회개는 공로가 아니다. 회개를 했다고 해서 '죄 사함 받는 공로'가 생기는 게 아니다. 죄는 하나님이 용서하신다. 그리고 '죄 사함 받기 위해서' 하는 회개는 칼빈이 그토록 논박한 행위 공로 사상과 궤를 같이 한다. 회개는 관계 회복일 뿐이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사죄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회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를 공로로 보려고 한다.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은 '회개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드러남에 대한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하다. 온 교단이 회개하는 틈에 자기도 같이 회개했고, 그리고 죄는 하나님과 개인과의 문제이니까, 하나님과 다 정리된 문제니까 끝난 문제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싸부로 모시고 있는 칼빈 선생이 웃으신다!
쩝, 두서없이 주절주절 읊어봤다. 요즘 들어 이른바 '소명'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고신 교단과 한국 교회에 큰 환멸이 느껴진다... '외적 소명'이라는 게 있다는데,,, 고신 교단에 부름받은 우리 모두에게 '외적 소명'이 사라진 게 아닐까... 교단이 이처럼 거꾸로 가고 있는데, 자기에게 '내적 소명'만 충만해선 뭐하겠는가...
쩝, 그러나 '목사'만이 교회가 아니라는 데 한 가닥 위안을 얻으며, 또 주위에 있는 훌륭한 동역자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교단이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나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이 교단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목소리에 청종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가 그 동안 이 고신 교회에서 받아온 신앙 교육대로 '하나님 앞에서 살자'.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하나님 입장에서 고신 교단이 필요 없으면 버리실 것이다. 지금 초대 교회 중 남아있는 교회가 있는가... 우리도 그렇게 안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 가운데 내리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