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이 글은 개혁주의 신학교에 다니는 필자 개인의 입장에서 쓴 것임. 따라서, '복음'에 대한 이해도 그 계통임.)
우리는 왜 큰 일만 일어나면 호들갑인가...
우리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사람은 그야말로 '기호학적 존재' 내지는 '상징적 존재'다. 사람은 떡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말도 먹고 산다.
작금의 이라크 전쟁을 보며 구구한 '해석'들이 난무한다. 특히, 우리내 교회 안에서... 왜 우리는 이 전쟁에 의미를 갖다 붙여야 직성이 풀릴까. 왜 7시에 항상 밥을 먹어 오다가 8시에 밥을 먹은 일에 대해서는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왜 대변을 한 번만 누어 오다가 두 번 누게 된 일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우리는 왜 작은 일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우리는 왜 큰 일이 일어나야만 호들갑을 떠는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은 이미 그 의미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에게 사소한 일은 이미 우리의 의미 틀 안에 다 들어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어쩌면 너무나 부조리한 일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일상을 아작아작 깨고 들어오는, 너무나 불편한 그 넘을 우리는 맞닥뜨리게 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창조력의 발휘인가, 아니면 고된 형벌인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쾌락인가, 고통인가. 즉자적으로 사는 삶은 즐거움인가, 열등함인가...
예수 믿는 우리는 이런 큰 일에 대해서 의미부여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이런 심각하고 큰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게 경건한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번 이라크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며,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누가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구구한 대답들이 있다. 하지만,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근데, 이걸 공적으로 나누고 공유한다.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말은 바울 사도가 젤 먼저 썼는데, 잘 읽어보라, 바울 사도는 이 '비밀'이라는 말을 우리가 쓰는 것처럼 쓰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일어난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고난-부활-승천에 대해서 '비밀'이라는 말을 쓴다. 하나님의 비밀(은밀한 '뜻')은 '일어나 봐야' 알 수 있다.
근데 우리가 늘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뇌까리는 많은 '일들'은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그럴듯한' 것을 그저 추측해서 그러려니 하는 것일 뿐이다.
부모님에게도 우리는 근신한다. 부모님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여 방정을 떨거나,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소문내고 다니는 사람을 우리는 '호로자식'이라고 욕한다. 근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마구 이야기한다. 얼마나 방정맞고 참람한가.
특별히 이번 이라크 전쟁을 무슨 '이슬람 선교' 차원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선교의 문이 열린다나 어쩐다나...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폭격을 맞아서, 총에 맞아서... 그들이 내 옆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옆에 가서 '이슬람 선교' 운운할 수 있는지... 내 가족이 폭격에 맞아 다 죽었는데, 옆에 와서 "괜찮아, 하나님이 큰 뜻이 있으셔서 다 죽게 하셨을거야~" 따위의 소리를 누가 한다고 해 봐라(그렇게 말하는 입을 탁 때리지 싶다).
그저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 된다(물론, 취할 수 있는 행동을 병행하면서). 그냥 손 붙잡고 기도해 주면 된다.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우는 자들로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들로 함께 슬퍼하면 된다.
왜 세상에는 부조리한 일이 생기는가. 성경은 아예 초두부터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한 형벌' 때문이다. 이거 거부하면 기독교인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악과 재앙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이건 역설이다. 하지만, 이 역설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이건 별도의 긴 논의가 있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설명은 생략한다). 인간의 타락은 분명 인간의 책임으로 성경은 돌린다. '하나님의 주권' 개념을 여기에 적용해서 인간의 타락도 하나님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이 성경의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이 이것을 롬3장과 9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욥기도 이걸 잘 논증하고 있다. 욥기는 크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나님의 행동(주권,뜻...)은 예측할 수 있는가', '왜 하필 내가(우리가) 고통(재앙, 사고...) 당하는가'. 하나님의 뜻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일종의 '매뉴얼'로 만들어 재앙과 악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욥의 친구들이다. 욥은 이것에는 반대하지만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하나님은 둘 다를 반박하신다.]
이 전쟁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측면에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인간의 죄악, 고통..., 인간의 선택과 책임의 측면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부시와 미행정부의 죄를 욕하고 이라크 국민들을 동정해야 한다. 이슬람 선교는 전쟁이 끝난 뒤 논의할 문제다.
하나님이 알려주고 싶은 뜻은 이미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 다 알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