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 2004

2004년도 상반기 댓글들 중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저도 "하나님의 심판", 그것도 "믿음만으로(물론, 믿음에 따른 행위가 포함되는)" 의-불의, 선-악을 갈라내는 심판을 생각하면 신앙이 다 떨어지려고 합니다. 예전에 제가 본 영화 중에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이거 보고 한 며칠 제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건 이런 거였거든요. "그래, 인간이 불완전하고 악한 거 다 안다. 그리고 이런 것 심판 거리라는 것 다 안다. 근데, 삶에는 이런 거만 있는 게 아니라 소소한 추억거리들과 정이라는 게 있다. 심판을 위해서 삶의 아기자기함을, 그리고 사람끼리의 사랑과 정 같은 것까지도 심판이라는 이름 하에 깡그리 작살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머, 이런 문제들...

사실, 저는 기존의 고통-악에 집중하는 신정론보다 저런 식의 접근이 더 마음을 울렸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가족들간의 정, 연인의 사랑,,, 이 모든 것이 심판(영화에서는 지구가 폭발하는 것으로 나옵니다)이라는 이름 하에 작살납니다, "믿지 않는다면"...

그리고 계시록에 보면 짐승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이 곰곰히 음미하면서 읽어보면 아주 섬뜩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로보트 만화영화하고 거의 똑같은 구도로 되어있는데요, 로보트 만화영화에 보면 항상 악당은 "우주에서" 옵니다.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우리의 로보트는 "땅에서", "바다에서" 사람들의 성원을 받으며(경배를 받으며), 사람들의 놀람과 기대 가운데(이적을 보고 놀랐더라) 출동합니다. 사실, 계시록의 이야기에서 로보트는 짐승입니다... 그리고 우주의 악당은 미가엘, 어린양 등입니다... 미가엘, 어린양이 사람들에게 인기있고 사람들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짐승이 사람들에게 인기있고 사람들 편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을 공격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주의 악당 편에 있는 자는 오직 교회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인류의 배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교회, 순교자들은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달라고까지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듣고 하나님은 진노의 대접을 쏟으시지요...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계시록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성경 전체를 뚫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만약 계시록과 성경 전체를 정경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운명은 대충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제한 속죄론을 믿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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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신"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지, 근데 이 "신"이 어떤 신인가가 관건이라는 생각...

사실, "신"이 만약 세상이든 세계든 존재 일반이든 이른바 좋은 것, 완전한 것,,, 머 이런 거를 다 끌어모아놓은 존재라면 무신론이 맞다. 신을 이런 존재로 여전히 놔두면서 세상의 악과 고통을 죄다 설명하려면 고도의 형이상학적 기예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작업을 엄청 많이 해놔서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여러 기예들에 익숙해져 있지.

자연을 "코스모스"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카오스"로 파악할 수도 있다. 똑같은 자연을 보고 피타고라스는 질서를 봤지만 석가모니는 고와 번뇌를 봤다. 그럼, "우기지 않고" 코스모스, 혹은 카오스가 옳다고 할 준거는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유신론을 설득시키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일반적인 "신" 관념을 부수고 들어오시는 분이시기에. 그저 어떤 존재, 어떤 분을 소개해주는 것이 전도의 요체가 아닐까 한다. 나는 본회퍼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사랑 등의 모든 좋은 것들은 굳이 신 없이도 설명 가능하고 실현 가능하다. 만약, 이것을 설명하려고 신을 도입한다면, "형이상학적 우기기"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늘 권력적인 주어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지...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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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지...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구제"해보려고 숱한 해석틀을 만들어내고...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출애굽했지만, 하나님은 식민지 상황보다 더 잔혹한 "인종청소"를 명하셨다. 이건 어떤 독법으로 읽어야 하나... 하나님이 명령한 유아까지도 포함된 "가나안 멸절"은 초문화적으로 반도덕적이고 반인륜적신 처사지... 이런 것들을 정당화시키려하지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정직한 성경읽기가 아닌가 한다.

만약, 하나님을 우리의 선악 기준에 맞게 뜯어고치려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체된다. 영지주의는 구약을 "비유"로서, 마르시온은 제거함으로써 읽으려 한 것은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취사선택하게 되지... 이 하나님을 해체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선과 의와 생명으로 여기고 성경을 읽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분으로서. 우리의 선악 체계에 잡히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족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시온에 거치는 돌이시지...

겨우 과일 하나 따먹은 죄 때문에 사람을 지옥보내기로 작정한 하나님, 가나안을 인종청소시키신 하나님, 그리고 잔인하게도 자기 아들을 죽인 새디스트 하나님에게 실족하지 않을 때 진짜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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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과 "죄"의 관계가 좀더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차원과 인간 일반에서 통용되는 죄의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네가 말한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렇다면 대신(對神) 관계에서의 죄와 대인 관계에서의 죄가 분명히 나누어지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세상의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오직 생명, 의, 진리로 여기시지만, 사람들은 나름의 생명, 의, 진리가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 의, 진리인 독생자를 거부한다는 것... 이 충돌에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生)에의 의지, 즉 살아남고자 함이 탐심의 근원이라는 결론이 나지. 탐심이 장성해서 죄를 낳고 말야. 이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혹은 잘 살고자("잘 사는 것"이 어떤 것으로 여겨지든 간에) 정치도 하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하니까. 이렇게 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모든 사람은 탐심에 가득 차 있다"라는 성경의 선언들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님 떠난 인간의 모든 살아남고자 함, 복지활동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로 규정된다. 죽음은 저절로 들어온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세상에 풀어놓으셨다. 인간 실존은 "사망에서의 도피"다(히2:14). 사망에서 도망치려 하든, 사망과 맞서 싸우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하늘 나라 가치 실현"은 어떤 것일까. 만약, 하늘나라 가치가 그저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회"라면 하늘 나라와 안 하늘 나라의 경계는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