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01, 2004

약한 나로 강하게

오래된 글

오랫만에 CCM 중 명곡이 나왔다. 원곡은 외국곡인듯 한데, 번역이 좋다. 내가 아는 찬양 중 이 노래만큼 세례를 시적으로 형상화시킨 곡을 보지 못했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이 곡은 신약 성경, 특히 바울 서신의 핵심 논제 중 하나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실현되었다"를 깊이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곡의 범상치 않음은 후렴 부분에서 먼저 드러난다. 1, 2, 3절의 내용이 모두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라는, 절창으로 마무리된다. 어떻게 "약했던 내가 강해진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관계 있는가, 어떻게 "눈먼 내가 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관계 있는가, 어떻게 "깊은 강"과 거기서 죄가 씻기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를 일으키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관계 있는가. 이 노래는 이런 엄청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세례는 무엇인가. "물에 빠져죽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 대표적인 세례가 세 개 나온다. 노아 홍수, 홍해 사건, 요단강 도하 사건. 모두 건널 수 없는 물을 건넌 사건들이다. 태초에 땅이 없고 어둠이 있었을 때 물만 있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고 뭍이 드러났고 생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생명이 생기기 위해서는 물이 땅에서 걷혀야 했다. 그러므로 물이 땅을 먹어들어가는 것은 창조를 되돌리는 것이며 이것은 곧 심판의 현실이다. 코로 숨쉬던 모든 생명은 다시 물 아래서 최후를 맞게 된다.

세례 요한이 전파한 세례의 정식 명칭은 "회개의 세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세례 요한은 세례를 줌으로써 임박한 심판을 전했다. 즉, 노아의 홍수처럼, 홍해 사건처럼 곧 하나님의 심판이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물세례와 불세례를 요한은 이야기하는데, 이것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는 생략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다. 요한이 예수님을 만류한 것은 예수님은 심판의 주체이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 하라고 하시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는 것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요단강에 잠겼다가 올라오셨다(마태와 마가복음에 보면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라는 말이 있다. 다른 세례받은 사람들에게는 물에서 올라왔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라야 물에 빠졌다가 올라올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라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하나님도 하늘에서 음성으로 그리스도의 아들됨을 증거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은 노아 홍수, 홍해 사건, 요단강 도하 모두를 자기에게로 끌어붙이셨다. 그들이 건널 수 없는 물을 건넜다면, 빠져죽었어야 할 물에서 올라왔다면 그것은 "그 씨(자손)", 아브라함이 기다린 그 자손, 다윗이 기다린 그 자손을 증거하는 차원에서다. 그들이 살아남아 한 가문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그 가문을 통하여 태어날 한 아들을 위해 청지기 노릇한 것이다. 자연적인 차원에서는 몇 번이나 대가 끊겨야 정상인 상황에서 그들의 대는 이어졌고,,, 이것은 어디서 나온 능력인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에서 나온 능력이다. 따라서 그들을 물에서 건져낸 것은 그 아들로 말미암음이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이것을 증거하셨고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도 함께 증거하셨고 성령님 역시 그러했다.

이제 숱한 믿음의 조상들이 기다려오던 바로 그 아들이 오셨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서, 그들이 바라보았던 참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 육신의 죽음을 넘어서 오는, 사망 권세에 짓눌리지 않는 생명, 그것이 나타나야 한다. 그래, 십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몸소 죽음을 이기셨다. 그리고 죽음에 매이지 않는 참 생명이심을 증거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지실 십자가를 세례라 하셨다(눅 12:50). 세례나 십자가 모두 죽고 다시 살아나는 사건들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빠져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올라온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장사되고 다시 살아난다. 그리스도와 함께 강을 건넌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다. 노래가 몇 자 안 되게 담아내고 있는 내용을 나는 이렇게 길게 풀어버렸다... 이래서 나는 예술에 대한 비평을 싫어한다. 평론가를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뭐, 가사는 그래도 입댈 것이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