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 2010

첫사랑이라…

오래된 글

어제 어찌어찌하다가 아내와 첫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첫사랑이 과연 뭐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이 나름 정리가 되었다.ㅎㅎㅎㅎ

일단, 첫사랑은 '육신적 정신적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랑'이라는, 아내가 어디 인터넷에서 읽은 정의가 제일 괜찮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모든 사랑의 특징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첫사랑만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렬하고 두드러지게 다가오는가. 그건 '첫' 사랑이기 때문이리라. 제대로 처음 해 본 사랑. 모든 새로운 경험은 제대로 처음 의식적으로 겪은 게 제일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예를 들어 '자전거타기'를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막 배우기 시작하여 제대로 딱 타게 되었을 때의 그 풍경과 기분과 인상은 강하게 낙인 찍힌다. 난 지금도 내가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의 그 풍경과 기분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자전거 탈 때마다 아마도 이 기억은 계속 무의식 속에서 반복되었을 거다. 왜냐? 아직까지 내가 잊어버리지 않고 그 광경을 기억한다는 거다. 아무리 강렬해도 동일한 경험이 반복되지 않으면 언젠가 세월이 가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일한 경험이 반복된다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첫사랑... 이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끝난' 사랑이다. 첫사랑과 그 이후의 사랑에는 단절이 있다. 자전거타기에는 단절이 없다. '첫자전거타기', 뭐 이런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애에는 '첫'사랑이 있다. 이는 연애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짝사랑은 첫사랑일 수 없다. 그냥 마음앓이는 될 수 있어도. 설령 그게 첫사랑의 아픔과 동일한 강도 아니 그 이상의 아픔을 지닌다 하더라도.] 너와의 사랑이기에 너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너와의 사랑도 끝이 난다. '너'의 자리에 또 다른 '너'가 오기에 나는 또 다시 너와 했던 경험을 또 다른 너와 하게 된다. 그러나 너... 지금의 너가 아니라 지나간 너... 사랑의 기쁨과 희열과 아픔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그 근원과 매개와 대상이 된 너... 그 너는 결코 지금의 너와 같을 수도, 지금의 너로 대체될 수도 없는 너인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와 함께 한 너... 그 모든 '처음'의 순간들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내 안에 찍힌다. 그리고 거기에는 '너'가 함께 있다. 그러나 이 너와 함께 한 순간들을 '첫사랑'이라 부르고 있다면... 이제 내가 설령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내 옆에 있는 너는 그 너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 첫사랑의 쓰라림이 있다. 그 너와 지금의 너가 같지 않다는, 그 근본적인 사실에 첫사랑의 아픔이 있는 것이다...

난 첫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을 떠올릴 때, 내 안에 있는 영상과 소리와 냄새와 감촉은 온통 지금의 아내의 것이다. 우리가 다녔던 곳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 지금도 눈만 감으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내 안에 찍혀있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사는 한 이것들은 반복되기에 내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일 지금 내 아내가 나의 첫사랑이 되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득하다. 내 아내 말고 다른 사람이 지금 '너'로 내 옆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과 사랑이 깊어지면 질수록 내 안에 찍혀있는 첫사랑의 편린들은 더더욱 아픈 가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난 내게 첫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정말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감당할 건가, 그 아픔을.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첫사랑을 갖고 있고 또 그걸 극복하면서 산다. '극복한다'는 말이 좀 매정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첫사랑으로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진짜 첫사랑은 극복해야하는 그 무엇이리라. 위에서 쭉 이야기한 내용을 근거로 한다면, 첫사랑의 극복은 오직 그때의 나 혹은 너를 타자화시킬 때만 가능하다. 이 타자화는 두 가지 방향성을 갖는다. 하나는 그때의 나 혹은 너를 증오하는 것이다. 즉 '소외'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때의 나와 다른 나, 그때의 너와 다른 너가 되어가는 것이다. 즉 '성숙'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를 선택한다. 강도야 다르겠지만, 그때의 나 혹은 너를 증오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것은 약하게는 그때의 나 혹은 너를 외면하고 부인하는 것으로, 강하게는 미워하고 욕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흔히 말하는 '첫사랑은 무덤까지 갖고 간다'라는 게 바로 그때의 나 혹은 너를 외면 내지는 부인하는 쪽으로 하는 선택이다. 주변에 보면 드물게 성숙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인격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더라. 여유가 생기고. [물론, 난 업그레이드 안 돼도 좋으니 첫사랑이 없는 쪽을 선택하겠다.]

한 줄 요약: 첫사랑 되도록 만들지 말고 만들었으면 성숙으로 극복하자. ^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