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김탁구도 아니고 아빠회사에 취직하다니…” 누리꾼 부글부글
행시, 외시를 폐지한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 일은 한국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반적으로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사실, 행시, 외시야말로 사시와 함께 '실력'을 '계량화'하여 선발하는 시스템의 꽃들이라 할 수 있다. 배운 것에 대한 평가가 수치(점수)로 딱 나오고 이게 곧 선발(인원이 딱 정해져있는)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정은 한국 사회에서의 신분을 결정하는 대입시험에 그대로 적용이 된다. 소위 고시들은 어떻게 보면 대입시험의 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입'이라고 들어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육적 평가를, 선발을 위한 기제(機制)로 일원화시킨 곳에서 참다운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고시는 '교육적' 평가가 목적이 아니라 선발이 목적인 '자격'시험이라는 사실이다. '선발'은 정의(定義) 상 경쟁을 반드시 내포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비극은 대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입이 고시화되고, 따라서 중등교육이 고시학원같이 되었다는 데 있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이렇게 대입이라는 '고시'에 종속된 한국의 중등'교육'은 사실상 교육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근본이 있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을 말하고 지향하지, 어떤 특수한 자격을 말하고 지향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중등교육의 왜곡이 자체 안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기별로 분류된 교육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등급이 높은 교육은 등급이 낮은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입'이 모든 학교교육의 근거가 되고 바탕이 된다. 고등교육이 아니라 대입. 대입이 초등과 중등교육을 지배한다. 그리고 '취직'은 대학교육, 즉 고등교육을 지배한다. 알다시피 취직시험 역시 고시 혹은 자격시험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에는 엄밀한 의미로서의 교육이 부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이 '고시' 같은 자격시험을 없애는 것인가. 고시나 입사시험에서 합격의 기준이 선발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되어있는가'여야 하는가. 이건 또 아니다. 이미 산업사회를 거쳐서 분업이 일상화되어있는 문명사회에서 이른바 '선발'은 어떤 의미로든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 어떤 특수한 자격 요건을 갖추는 것과 별개의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선발에서 공정을 말한다면, 그 공정은 적어도 두 가지를 확보해야 성립된다. 하나는 선발하는 주체쪽에 자격요건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자격요건을 갖추지 않은 지원자가 합격하고 반대로 갖춘 지원자가 탈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또 하나는 선발의 수단이 모두를 납득시킬 만하게 객관적이냐 하는 것이다. 필기시험이든 뭐든 자격요건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야 한다. 사시에 갑자기 물리학 문제가 나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연구원을 뽑는데 조직충성도를 가장 반영을 많이 한다든지 하면 선발 수단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행시와 외시를 폐지한 후 이 고시들을 대체할 선발기제들의 공정성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확보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어렵다. 대체적인 방향성이 필기 시험을 피하고 면접 등을 통해 수치화, 계량화되기 힘든 자격들을 보는 쪽인 것 같다. 물론, 이런 방향성은 선발 주체쪽의 질과 객관성만 확보된다면 제대로된 자격시험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이 기사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사바사바'와 '연줄'과 '빽'의 힘이 세기 때문에 기존 필기시험을 중심으로 한 선발보다 공정성이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