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가 소위 '고물상'이 엄청 쓸 만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가구 중 많은 것들이 고물상 출신인데, 이게 비싼 돈 주고 파는 IKEA 가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튼튼하고 쓸만한 것들이 많다. 가격은 10-15유로 주면 괜찮은 것들을 살 수 있고, 소위 '앤틱'과 그냥 중고품의 경계에 있는 것들도 몇 십 유로 주면 살 수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고물이라 생각해서 갖다 버리고 처분한 것들 중 지금에사 매우 아까운 것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 고물(古物)은 문자적 뜻이 '오래된 물건'이라는 뜻인데, '오래된 물건=갖다 버리는 물건'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유달리 유행을 타고 새것을 좋아하는 게 '현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고물의 문자적 번역인 antique는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매김했고, 이건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앤틱'이라는 말로 정착이 되었다.
그런데 유럽에 와보니, 심심하면 벼룩시장이요, 동네마다 고물상이다. 네덜란드 고물상은 네덜란드대로, 프랑스 벼룩시장은 또 프랑스대로 저마다 개성이 있고 맛이 있다. 게다가 얼마나 물건들을 깨끗하게 아껴 쓰는지 몇 십 년, 심지어 백 년이 된 물건도 매우 쓸만하다. 또, 고물들을 그대로 쓰레기 처리했다면 들었을 처리비용이 고스란히 고물상들의 소득으로 전환이 되어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게다가 물건마다 이전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어 그걸 만나는 맛도 쏠쏠하다. 물건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ㅎㅎㅎ 물활론자(物活論者)는 아니더라도 물건을 통해 어떤 인격과 희미하게나마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은 매우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고물들을 애용하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고물 중 옛날 책들은 작가의 인격+그걸 소유한 사람의 인격을 한데 경험하기에 매우 즐겁다. 내가 산 몇 권의 책들은 베르까우어 교수의 서재에서 나온, 그분 친필 서명이 담긴 책도 있다. 물론, 그런 줄 모르고 샀지만. 또 독일의 틸리케 교수가 소장하던 책을 본 적도 있다. 또 어떤 책들은 300-400년이 됐는데, 이게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박물관에나 가 있을 것들이 말이다... 그만큼 그 책이 보존된 권수가 많아서일 게다.
자본주의는 생산된 상품이 빠르게 소멸해야 속도를 낼 수 있다. 상품-교환 체계를 이제서야 극복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소멸과 그 소멸을 대체하는 상품 생산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그야말로 '소비 사회'는 상당히 척박하다. 단지 '앤틱 취향'이 아닌, 뭔가 좀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를 위해 나는 '고물'이 잘 유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핸드폰도 조금만 지나면 고물로 취급받는 우리나라와, 아직까지도 작동이 잘 되는 몇 십 년된 선풍기가 여전히 고물상에서 유통되어 팔리고 있는 여기 유럽을 물론 수평적으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우리나라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테크놀로지조차 '유행'으로 만들고 생산이 아닌 '소멸'을 위해 작동하는 것으로 만들어놓은 게 우리나라 전자기업들인 듯 하다. 신기술은 구기술로 생산된 상품들을 '고물'로 돌리기 위해, 그래서 소멸시키기 위해 개발되지 않냔 말이다...
그래서 난 온 초가집들을 죄다 스레트 지붕으로 바꾼 새마을운동이 아쉽고, 옛 길과 옛 건물을 뭉개고 온 나라를 덮고 있는 콘크리트가 아쉽다... '가난'을 겪어보지 못한, 배부른 세대의 푸념일런가...
2019-05-06
여기 Hilversum에서는 ‘네덜란드 고물’에 대한 내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전에 살던 캄펀과는 달리, 진짜 ‘고물’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