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 2017

샤만을 금하심

(신 18: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신 18: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신 18: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신 18: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신 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신 18: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샤만은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을 넘어서는 초현실을 자기 안에서 구현해내는 자다. 이 초현실은 현실을 규정하고 규율하는 논리를 제공한다. 여호와께서 샤만이 구현해내는 이러한 논리를 ‘가증하게’ 보시는 이유는, 이것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그 계보를 잇는 선지자를 통해 주신 율법을 통해 규정되는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의 본뜻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가나안에는 초현실과 잉여현실이 없어야 한다. 오직 율법에 명명백백하게 약속되어있는 복과 저주만 그 땅의 가능성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땅 자체의 논리를 따르는(=육신적인) 길과 흉은 가나안 땅에 들어설 곳이 없다. 샤만의 길과 흉이 가나안 땅을 규정하게 된다면 가나안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요, 선지자를 통해 반포된 말씀으로 규정되는 땅이 아니게 된다. 가나인이 애굽으로 화하는 것이다. 샤만이 제공하는 현실들, 샤만이 열어주는 현실들을 폐하고 모든 복과 저주가 가나안이라는, 구체적인 그 땅 위에 구현될 때, 율법으로 인해 열리는 단 하나의 현실만 존재할 때 가나안은 가나안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집안 식구가 되는 것, 즉 여호와와 동거하는 것(연합하는 것)은 현실을 초월하거나 육신을 벗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오직 ‘사람’의 자리에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과 연합이 가능해진다 ―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 가나안에 반포된 율법은 철저히 사람을 흙인 육신 속에 속박하는 계명들이다. 자기 육신을 넘어서고 초월하려는 모든 시도(=탐심)는 ‘불법’이요, ‘불의’라고 정죄된다. 여호와라는 하나님과의 연합은 역설적으로 철저히 사람의 자리를 사수할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자리를 철저히 지켜낼 때라야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하나님처럼 영생할 수 있는 것이다. 신과의 합일 등을 추구할 때 오히려 저주를 받는 곳이 바로 가나안, 사람의 본래 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