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 2017

죄가 더한 곳—십자가의 뜻

십자가는 모든 육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육체 위에 임한다. 육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그저 육체를 혐오하거나 가증스러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인데 까닭 없이 증오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는 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육신(≒땅-흙)을 심판하시는가? ‘사람으로 인해서’다(창 3:17). 심판하시는 행위는 ‘육신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 외의 그 무엇일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을 미워해서 육신을 심판하시는 게 아니다. 사람이 육신을 사랑하고 그것을 생명으로 삼기에 하나님은 육신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피조물이 고통 가운데 탄식하며 사망에 굴복하고 있는 이유는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인데, 이렇게 굴복케 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놓고도 피조물 가운데서 신성(神性)을 구하며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여겨 섬기려하기 때문이다(롬 1:18-23).

그러므로 ‘여호와’라 이름 하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순종은 이러한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참되다 믿는 것(아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순종과 믿음은 육신을 부인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내포하는데, 이 부인은 우선 자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누구든 ‘나’라 스스로를 칭할 수 있는 자는 육체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없는 인간은 없다. 모든 사람은 육체가 되었기에 이러한 참 자기 부인을 행할 능력과 재간이 없다. ‘내’가 살려고 자기도 부인하지, 자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이다. 하나같이 육체대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섬기려 했고 하나같이 육체를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죽어도 사망의 몸을 놓지 못한다. 다시 태어나도 놓지 못한다. 영겁을 회귀하며 있을 몸을 찾는, 더러운 영(귀신)과 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나 찾은 몸은 항상 ‘사망의 몸’이다.

오직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영과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참 순종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우선 자신의 육신부터 죽음에 내어주는 심판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그는 알고 계셨다. 이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은 아셨기에 순종하셨다. ‘육신을 부인함,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드러냄’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었다는 걸 예수님은 깨닫고 계셨던 것이다. 이렇게 깨끗한 심령을 가진 인자(人子) 예수를 위해 하나님은 ‘한 몸’을 예비하셨다(히 10:5). 부활의 몸,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참 순종을 아시는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정죄되어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육신조차도 율법의 정죄를 이기지 못했다. 율법의 불의를 담당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율법의 의, 행위의 의, 육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이 의를 파수하고자 하는 통치와 권세(유대인들, 로마인(이방인)들)에 의해 예수님은 죽으신 것이다. 율법의 의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되어 죽으셨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문제인가, 육체의 문제인가. 육체의 약함이 문제다. 실상 모든 육체는 그것대로는 예수님을 죽인 통치와 권세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아는 의와 생명은 육신 안의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과 육신 밖에서 임하는 생명과 의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다. 십자가의 이 계시를 통해서만 사람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알 수 있다. 자기가 파수하고자 한 의가 예수님께 넘겨 짊어지게 한 불의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죄를 지고 원래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