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식충식물을 얼마 전부터 키우고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파리지옥’, 다른 하나는 이름이 좀 어려운, 통발 같이 생긴 놈. 둘 다 빈도수는 높지 않지만 실제 벌레를 잘 잡는다. 파리지옥은 우리가 실험 삼아 거미 한 마리, 파리 한 마리를 잎 위에 떨구어 줘봤는데, 정말 이파리가 싹 오므라들면서 감옥처럼 벌레들을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몇 주에 걸쳐 소화를 시켰다. 옆에 있는 통발 같이 생긴 애는 물을 좀 담아두니 개미가 거기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 그냥 평범한 물을 담았는데, 개미가 빠지자마자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아, 안에 뭔가 농축된 화학 성분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파리지옥에 꽃대가 생겼다. 그리고 길게 자라더니 며칠 전에 꽃이 피었다.
파리지옥에 꽃이라... 아, 파리지옥도 식물이구나, 불현듯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벌레를 잡아먹긴 하지만, 너 또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을 향해 푸른 잎사귀를 벌리는 식물이구나. 이제 수줍게 꽃대를 세워 하얀 꽃을 맺는 너도 식물이구나.
파리지옥의 꽃대가 유난히 길다. 너무 길어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파리가 관상용이 될지언정, 꽃은 관상용으로는 별 볼품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넘의 꽃대는 왜 이리 긴 것일까. 길더라도 왜 위로 죽 보기 좋게 뻗지 않은 것일까, 왜 되도록 자기 몸에서 옆으로 길게 떨어져 꽃을 피울까.
이파리 때문이리라. 꽃 속에 묻혀 씨를 맺게 해줄 고마운 벌레들이 혹여 이파리에 앉을까 저어해서 꽃대를 길게, 그것도 볼품없이 옆으로 저렇게 뻗게 해서 꽃을 피웠으리라. 꽃으로 가서 씨를 맺게 해줄 벌레들을 자기 이파리에서 떼놓기 위해 꽃대를 저렇게 필사적으로 멀리 뻗어내었구나.
오늘, 파리지옥을 통해 존재의 역설을 잠깐 들여다본다. 빼앗음과 나누어줌이 한 몸에 있어 부대끼지만, 생명은 네게서 빼앗음도, 나눔도 함께 어우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