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 2017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함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본체는 ‘죽지 않음’이다. 사람은 단지 ‘죽지 않는 존재’로, 불로장생의 몸으로 창조된 게 아니다. 이게 창조의 목적이 아니다. 한 번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래야 하나님의 죽지 않음, 즉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긍휼로 인한 생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거듭남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본체를 그리스식 신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러므로 잘못된 이해다.

아담은 죽지 않으려 하여 죽게 된 것이다. 죽지 않으려 함, 이게 바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함인 것이다. 인생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죽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인생이 스스로를 흙에서 나온 존재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생기가 아니었다면 각양 짐승들처럼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네페쉬 하야’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 시인, 이 순종이 그를 육에서는 죽고 영으로 다시 사는 존재가 되게 한다. 이 거듭난 자리가 바로 사람의 자리, 생육과 번성(=생명)의 자리인 것이다.

다시, 하나님이 단지 ‘죽이시는 분’이시지는 않다는 것을 상고해야한다. 하나님이 먼저 자기 부인을 명령 · 요구하시는 것은 교훈 하나를 주려 하심이다. 바로 우리에게는 의(좋음, 생명)가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가 있다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영생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처럼 스스로에게서부터 선악을 알고자 한다, 판단하려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생이 흙에서 나온 까닭과, 사망을 말씀하시며 선악을 가르치신 의미를 인생은 깊이 묵상해야 한다. 인생이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 하시며 그에게 하나님 당신의 생명을 주신다.

우리는 지금, 본래 잡혀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과 방불해져버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를 본다. 모든 인생이 교만하여 죄인된 그 자리에서 겸손하여 순종의 의로움을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