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4, 2017

그리움과 영원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반드시 첫사랑과 결혼하리라.’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에 실패를 하고 고통에 겨워하는 것을 많이 봤던 탓이다. 특히 나와 아주 가까운 후배의 첫사랑과의 이별은 참으로 절절했다.

원래도 그렇게 연애를 잘 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굴뚝같은 마음과는 달리 현실이 받쳐주지 않아서, 또 군복무 등의 분주한 일들에 묻혀 이십 대 초중반은 그렇게 지나갔고, 이십 대 중후반부터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어, 홀로 지내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세월을 지냈다.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다가 정말 평범한 계기를 통해 만난 게 지금의 아내다. 대략 2년의 세월을 열심히 연애했다.

우리는 늘 서울 한가운데서 연애를 했다. 주로 시청역, 광화문, 덕수궁, 이런 데가 우리가 돌아다닌 장소들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고(故) 이영훈님이 짓고 이문세님이 부른 연가들이 그대로 우리의 노래가 된다. 그런데 한창 연애할 때는 이문세의 연가들을 그렇게 즐겨 듣지 않았다. 이영훈 · 이문세의 연가들은, 이 ‘옛사랑’이라는 제목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이 옛사랑 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내게는 ‘옛사랑’이 없다고. 내게는 오직 ‘첫사랑’만 있을 뿐이라고. 이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게 하리라, 이렇게 되뇌며 뿌듯해하곤 했었다. 이영훈님은 도대체 어떤 애틋한 사랑을 했기에 노래가 다 이렇게 절절한 것이냐. 나는 절대로 저 고통의 세월에 동참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결단하곤 했었다.

그때부터 죽 아내와 지나온 세월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이영훈 · 이문세의 연가들이 귀에 들어오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꽂히기 시작했다. 이문세가 읊조리듯 부르는 구절구절은 아내와 함께 거닐던 그때 그 광화문, 덕수궁, 시청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 시작되었다―옆에 번히 아내가 있는데 아내가 그리운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은 분명 지금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인데, 왜 그리움이 밀려드는 것일까.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이 시작된다면 반드시 ‘옛사랑’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첫사랑과 절절하게 이별하던 그때 그 후배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리고 오늘 이 ‘옛사랑’ 노래와 같은 애절함은 아니지만, 내게도 옛사랑의 그리움이 찾아온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시작하면 바로 그때부터 그리움 역시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 그 사람’은 어느새 내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항상 떠나가고 있다.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같던 그때 그 아내의 모습은 이제 “영원 속에”, 아니 영원 속에만 있을 뿐이다. 결코 다시 오지 않을 모습이기에 결코 충족되지 않을 그리움이다. 그러하기에 이 그리움은 영원을 사모한다. 내게 그때 그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그때 그 아내와 지금의 그 아내를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때 그 아내’는 ‘옛사랑’이 아닐까.

그리움은 영원을 지향한다. 그러나 영원이 그리움을 삼켜버릴 때 그리움은 ‘숭배’가 된다. 숭배는 그리움이 드러내고 있는 ‘삶은 들의 꽃과 같다’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들의 꽃은 폈다가 금방 지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 그러나 들의 꽃에서 아름다움만 분리해내어 가져온다면 들의 꽃은 이미 들의 꽃이 아닌 것이다. 들의 꽃이 한때 아름다웠음을 그리워함과 그것을 숭배함은 다르다. 그 아름다움을 놓아줄 수 있기에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다.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른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면하고 수용한다면 숭배할 수 없다.

영원을 포기할지언정, 그립고 애틋한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리라. 이로부터 긍휼과 은혜가 시작될 수 있으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