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두 가지 길을 취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의 진로와 안위에 대해 별로 상관하지 않고 복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과 절연하고 지내라는 것이 아니다. 애매하긴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 정도의 참여와 관심을 유지하며 그저 평범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진로와 안위에 어느 정도 깊이 관여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이미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가이사의 집 사람들”(빌 4:22) 역시 성도가 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소위 ‘기득권’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곧 그 사람을 교회에서 배제해야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세상의 진로와 안위에 어느 정도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민주정(民主政)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통치자의 지위를 부여받으므로 어느 정도는 두 번째 부류의 마인드로 살아가긴 하지만, 그러함에도 ‘실제로’ 저런 일들에 직접 관여된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므로 첫 째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이원론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진정 엘리트적이요, 기득권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첫째 부류의 삶을 택하여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식 없다, 이원론자라 비난하지 말며, 두 번째 부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득권자라, 다 누리고 있는 자라 비난하지도 말아야 한다. 교회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 부류의 삶을 살기로 했다면(첫째 부류의 삶에도 해당된다) 복음과 ‘비유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를 말하면서 불의와 반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일차적으로 복음이 제대로 증언되고 수용되는 맥락을 흐트러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 은혜 등등의 개념들 역시 세심하게 주의하여 사회적인 측면에서 제대로 된 맥락에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