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 2018

스피노자, 범신론, 욕망의 경계 없음

(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범신론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평가는 근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범신론적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신과 피조물 사이의 경계가 아니라 욕망의 경계다. 원칙적으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욕망은 경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논리’가1) 되어 ‘의지’가 (실재 차원과는 별개로 논리적으로는 적어도) 거세되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의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신이기에2) 모든 욕망은 제한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탐욕이 개입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가 과연 현실에도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스피노자 자신과 같이 선량한 인격과 고매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그의 윤리학은 잘 들어맞을지 모른다.3)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들, 그리고 본질상 팽창하고자 하는 집단과 사회에는 별로 안 들어맞는 윤리학이다.


  1. ≒율법. 스피노자는, 굳이 말하자면, ‘바리새인 선량화(善良化) 개조 버전(fork)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
  2. 전통적 기독교 신학, 특히 삼위일체론을 아는 사람은 유대인인 그가 persona, natura 같은 용어들을 활용하여 자기 생각을 전개시키는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내가 그러하다 ㅎㅎ). 그는 매우 대담하게도, persona라는 이름을 존재하는 전체 개별자 각각을 부르는 이름으로 삼아 버린다. 이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 기독교 신학에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이 persona는 우리말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위격’으로 번역하여 쓰는 바로 그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피노자가 persona를 이런 식으로 쓴 것이 그의 생각이 독창성과 참신함을 얻게 된 출발점이라고 본다. 전통적 삼위일체론에서 persona는 ‘셋’밖에 없지만, 스피노자가 개조한 틀을 따르면 이제 ‘무한’이 된다(natura는 결코 생산을 멈추지 않으므로). 이렇게 되면 persona인 개별자는 각각이 개별성만 유지해도 신적 속성인 ‘무한함’을 ‘전체로서는 함께’ 보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natura를 전통적 맥락에서 크게 개조할 필요 없이 ‘God(head)’라는 의미로 써도 나름 정합적이지만 참신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
  3. 그리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진짜 그러한지와는 별개로) 선량하고 고매하다고 ‘여기고 싶은’ 욕망이 강렬한 사람들에게도 잘 들어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