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 2018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한다. 왜 공허한가, 무엇이 없는가? 바로 ‘씨’와 ‘생물들’이다. 일원화하면 씨다. 깊음은 계시록에서는 ‘무저갱’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이는 물로 가득 찬 웅덩이, 즉 심연(深淵)이다. 깊은 물 아래 잠긴 땅은 씨를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열매를 낼 수 없다.

땅은 깊은 물 아래 잠겨있고 물 위에는 흑암이 있다. 즉, ‘하늘들’이 없다는 말이다. 하늘들은 물과 물 사이 생긴 ‘틈’(궁창)이다. 물 밖(물 위)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물과 물 사이에 틈을 냈다. 이 궁창이 바로 하늘이다. 그리고 궁창 밑(천하)의 말씀을 따라 모여들었고, 그래서 땅이 드러난 것이다. 드러난 땅, 마른 땅이 바로 ‘뭍’이다.

물 가운데 틈이 났는데, 이 틈에는 ‘빛들’이 들어찬다. 궁창이 없다면 물은 그저 흑암 아래 있었을 테지만, 이제 물과 물 사이에 난 틈에 낮을 주관하고 심지어 밤조차 주관하는 발광체들이 들어찬다. 그런데 물과 물이 나뉘기 전, 빛과 어둠을, 낮과 밤을 먼저 나누셨다. 즉, ‘물과 물 사이에 생긴 틈 = 빛과 어둠을 나눈 빛’인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단지 초월적인 의미라기보다는 하나님은 빛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하늘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으셨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드러나신 것이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만 물 위를 운행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때도 빛은 없었는가,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아직 하시기 전 아닌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영은 이미 빛이시기 때문에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필요 없다. 오직 피조물에만 이 말씀이 필요하다. 왜 그런가? 피조물은 빛이 본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딤전 6:16)이 바로 하나님의 빛이며, 이는 ‘창조되지 않은’ 빛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따른다면 하나님을 일컬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적 명칭은 ‘빛’이다. 간접적으로는 ‘있음(존재)’이 될 수는 있으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은 빛이다. 존재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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