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 2019

중보자와 매개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매개이다. 사람은 항상 율법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 즉, 율법이라는 ‘코드[code]’ 안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코드는 항상 탐심을 발동시킨다. 율법 ‘안’에서 살도록 하며, 그 안은 필요/필연과 이에 따르는 도덕률과 양심이 사람을 추동한다. 율법 안 어느 자리라도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나그네, 고아, 과부)은 항상 정죄되고 불안정한 지위를 가지게 된다. 율법은 나그네, 고아, 과부 등에 대해 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핵심은 이방인과 나그네, 고아, 과부가 같은 위상을 가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율법에 따라 선대할 수 있지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이방인을 이스라엘처럼 대하는 것이라면 이는 율법의 율법 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된다. 코드를 향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율법을 제정하고 준 주체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언뜻 보기에 이는 하나님이 단지 율법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소통하려는 의지 표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다. 즉, 율법은 직접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매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많은 것(만물)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 궁극, 목적)이다. 사람은 율법이라는 ‘매개’가 아니라 율법도 증언하는 그리스도라는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한다. 그리고 중보자는 코드와 기호와 의미 작용의 차원이 아니다. 선물과 은혜의 차원이며, 이는 모든 코드를 파괴한다. 오직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사귐과 관계만 존재할 뿐이며 이는 영원하다. 중보자는 매개인 듯 하지만 매개가 아닌데, 이는 중보자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