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 2019

복종과 순교

(딛 3: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딛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딛 3: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교회는 세상을 통치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주류는 항상 변하고 왕이든, 민(民)이든 통치의 주체 역시 변한다. 많은 경우, 통치의 방향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적어도 문자적으로는 배치된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복종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지금 말하고 있는 복종은 불의와 야합하라거나 보신(保身) 제일주의를 선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통치와 권세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지는 말라는 것이다.

또, 여러 박해와 목숨의 위협에까지 이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자경단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완전한 평화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원칙적인 면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시민 내지는 신민으로서 여러 기능과 직책을 담당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세상의 통치에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다. 이것이 反신앙적 내지는 反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 즉 ‘무리’로서, 세를 이루어 그 세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통치하려/다스리려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참된 순교 신앙은 이렇게 다스림의 자리에서 퇴거한 뒤 가능하다. 무리를 이루어 세상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할 때 비로소 순교가 되는 게 아니다. 순교는 세상 통치와 권세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다. 저항하지 않되 그들을 따르지는 않는 것. 그들이 보기에 옳지 않고 가소롭기에 받는 멸시와 박해를 그저 견디는 것. 결코 복수하거나 보응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순교의 요지다.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라는 권고에는 무엇이 전제되어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자칫 비방하고 다툴 만한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판’, ‘의/불의’, ‘구원’ 등의 용어들은 논쟁의 땔감들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을 아수라로 만들 수 있다(위 9절).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저런 권면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일종의 세력으로 삼아 우리 신앙과 배치되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그들과 다투며, 그들을 관용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길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관용이 곧 신앙의 타협이나 혼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