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9, 2019

성선설? 성악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자기를 위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이것이 성악설의 근거가 되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성선설 · 성악설 논쟁은 성경을 통해 결론날 수 없다. 성경은 차라리, 둘 다를 함께 인정한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이 곧 성악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경을 성선설 · 성악설 논쟁에 굳이 대입을 하자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본성은 선하게도, 악하게도 볼 수 있다, 혹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다’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다.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것이 죄 아래 놓여있는 현실은 사람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들며,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으로도, 악한 것으로도 드러나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소위 선해지는 것은 언제일까? 공감을 할 때다. 특히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할 때다.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때, 그 고통을 경감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될 때 대개 선한 방향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진짜 대규모 살육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공감력’ 만땅인 사람들이 善을 위해 싸울 때 생긴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살육하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선을 향한 공감력이 필요하다. 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서 사람들을 살육하기 위해서도 공감력이 필요하다. 사이코패스는 결코 복수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기껏해야 수십 명을 죽이지만, 제노사이드는 최소 만 단위다. 성경에서 주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사이코패스의 살육이 아니라 공감 능력이 충만한 갑남을녀들의 당 지음, 수군거림, 살인이다. 그러므로 그나마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 공감력조차 ‘절대적’ 의미에서 성선(性善)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공감력조차 사람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