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감정은 세상 모든 정의의 감정적 토대다. ‘정의구현’은 어떤 의미로든 빡침이 해소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빡침이 해소되지 않으면, 혹은 빡침이 투사 및 굴절이 되면 恨이 된다. 한이 쌓이면 죽어도 귀신이 되어 돌아오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빡침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것은 빡침을 해소할 수단을 ‘사회적으로’ 순치한 것이다. 개인마다 주관적 빡침은 매우 상이하여 모든 빡침들을 임의로 해소하게 되면 공동체가 붕괴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빡침에는 교집합이 있고, 또 적당한 수준이 있다. 어떤 특정 개인에게는 너무 빡치는 것이라도 대다수가 보기에 수긍이 되지 않으면 그 빡침을 되갚는 것을 불법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법이다. 법은 이렇게 빡침을 순치하고 조정해놓은 것이다. 물론, 누구를 기준으로 삼은지가 항상 문제가 된다. 기존에는 대체적으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기존에 무시되던 빡침들이 이제 구현되어야할 것, 정의로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