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성경, 인간의 의지가 협력하여 사람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단지 신인협력설로 배척할 것이 아니다. 칼빈 같이 본격 예정론을 주장한 사람도 멜란히톤을 단순히 배척하지는 않았다.
칼빈이 멜란히톤을 평가하는 말마따나 그의 저 주장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보면 된다. 칼빈이나 더 나아가서 베자 정도로 하드코어하게 예정론을 이해한다고 해도, '현상적으로' 그 예정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드러나느냐 라는 질문을 했을 때는 사람의 의지의 활동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과 두부 자르듯 딱 구분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장치들을 고안한다면 이는 칼빈이나 개혁자들이 비판한 '인간의 발명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중세 천주교의 칠성사와 같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런 시험/확인 절차는 가면 갈수록 인간 의지의 수동성 쪽에서 뭔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갑자기' 밀려 온다든지, 이런 어떤 수동적인 극적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했다는 확증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칼빈의 말을 설령 수긍한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데서는 멜란히톤의 말이 개혁 신학의 본령을 포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