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돈의 모임'으로 결정된다. 돈이 모인/모인다 여겨지는 곳이 가치가 상승한다. 그러므로 돈이 모이는 곳에는 더 돈이 모이게 된다. 그러나 '마음만' 있어서는 가치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실물과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마음만 있는 가치의 가장 극단이 바로 도박이다. 그럼에도, (특히 자본주의 하의) 가치에는 항상 '도박성'이 많든 적든 존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어떤 윤리적 내지는 규범적 함의를 띄기가 어렵다. 노동가치설이 일리는 있으나 그것을 현실 원리로 채택하는 것은 수많은 부작용과 한계를 노정한다. 노동력의 양은 돈이 모이는 양과는 달리 객관적 측정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돈을 소유하는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으나 돈을 쓰는 것은 소유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가치설을 채택하든 않든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할 수는 없다. 온전히 돈을 소유한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돈을 많이 두는 곳이면 곳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뿐 아니라 모든 가치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노동가치설은 이러한 고갱이를 윤리와 이데올로기로 극복하려하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다.1) 돈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도박과 낭비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합리적 계산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치환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노동가치설을 기본으로 하는 어떤 제도는 될 수 없게 된다. 노동가치설이야말로 돈을 경제적 가치 이외의 곳에 쓰고자(낭비하고자) 하는 욕망, 낭비를 가치로(심지어 경제적 가치로조차) 삼고자 하는 욕망을 원천적으로 부인해야 관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낭비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에 터하고 있고,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가치 이외의 것에 자기 가치를 투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망에 터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의 투기와 과열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비경제적 욕망들이고, 이것은 사랑, 헌신, 열정 등과 같은 영역이다. 이른바 '경제적' 노동과 비경제적 노고(?)의 경계를 확실히 그어 놓아야 노동가치설은 성립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인간 욕망의 차원으로 내려가면 그렇게 확실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잉여 가치'는 꼭 노동가치설로만 해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좀 더 보편적인 설명은 '잉여 가치는 낭비하고 싶은 의지에서 비롯된, 혹은 더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고평가(高評價)된 가치'일 수 있다.
- 노동가치설은 '유물론적'이라는 자기들 프로파간다와는 달리, 생각보다 더 '관념론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