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 2021

오늘부로 ‘필자(筆者)’를 졸업하기로 했다

우리 세대는(나만 그런가?) 학창 시절부터 글을 쓸 때 ‘나’라는 말을 쓰지 말고 ‘필자’라는 말을 쓰라고 배웠다. ‘나’는 별도의 근거나 권위가 없이 자기 견해를 명시해도 되는 사람, 이미 공적 객관성을 획득한 사람, 즉 ‘저자(著者, author)’나1) 쓸 수 있는 표현이니, 아직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글을 쓰는 사람’ 내지는 ‘글쓴이’라는 뜻의 필자(筆者)를 쓰라고 그렇게 배웠다. 즉, ‘필자’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이 글은 저자로 쓰는 게 아니라는’ 의사 표현을 하면서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나는 너를 지금 가르치거나 내 의견이 모두 권위 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한번 읽어봐 달라’, 이런 뉘앙스였다. 말을 할 때야 높임말에 ‘저’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격식을 갖춘 글은 말과는 달리 높임말을 배제하기 때문에 굳이 필자라는 말을 끌어쓴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나는 블로그 같은 데 글을 쓰더라도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필자라는 말을 썼었다. 여기 네덜란드에도 이와 똑같은 말(schrijver dezes)이 있던데, 여기도 오래된 말 취급을 받지만 여전히 자기 글에 쓰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런데 요즘은 필자라는 말을 굉장히 권위적인 말로 여기는 분위기다. 심지어 교수들도 이제는 학생들 글에 ‘필자’라는 말을 오히려 안 쓰게 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예전에는 넓은 의미의 학문 공동체 중 한 명으로서 필자라는 정체성이 있었는데(심지어 학부생조차), 요즘에는 특정 아티클의 공동 필자 중 한 명일 때 말고는 필자라고 일컫기가 어려워진 듯하다. 우리 때는 ‘나’를 쓰면 건방지다는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이게 반대로 된 것이다. 기분이 묘하다. ㅎㅎ 심지어 나름 ‘저자’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조차 자기 저서에서 필자라고 스스로를 일컬었는데, 속마음이야 어떻든 자기는 아직 저자가 아니고 여전히 배움의 길에 있다고 겸양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사회적으로 ‘저서’라고 인정받아 출판된 자기 책을 인용할 때도 ‘내 책’이라 안 하고, ‘졸저(拙著)’, 즉 ‘쓸모없고 서투른 저서’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위선이라 판단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상황 자체는 그러했다.

‘필자’가 권위를 내세우는 말로 여겨진다는 것은 ‘필자’와 ‘저자’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뜻이리라. 이른바, 너도 나도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감히 ‘나’라고 스스로를 일컬을 수 있는 시대. 자기를 저자로 칭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으면서도 그저 ‘필자’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과정과 경로를 거쳐 ‘출판’되었을 때 부여되던 기존의 권위 역시 신뢰를 잃어가는 시대가 왔다. 너나 나나 다 같이 저자(=필자)인데, 자기를 스스로 필자(=저자)로 일컬으니 권위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글 쓰는 일(筆) 자체가 대단한 일이 된 모양새다. 【‘글쓴이’라고 하면 권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데 이 말과 대응하는 필자는 권위적이라고 생각하니 내 감각에는 사실 많이 이상하다. 필자(筆者)가 오히려 ‘글 쓴 놈’의 뜻에 가까운데 말이다. 글쓴이 할 때 ‘~이’야말로 사실 높임말인데 말이다. ㅎㅎ】

이제 ‘주장(主張)’을 하는 데에 별로 권위가 필요 없는 때가 된 듯하다. 너도 나도 주장할 수 있다. 너도 나도 필자 혹은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예전에 출판 매체를 독점하고 허들을 깐깐하게 높여놨던 집단 말고도 여러 매체가 생겼다는 뜻이다.2) 대표적인 게 지금 ‘내가’(필자가 ㅎㅎ) 이용하고 있는 블로그이다.3) 1000명 이상에게 자기 글을 읽힐 수 있는 상황이 ‘특권’이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기존에는 1쇄를 1000부 인쇄하기로 하면 1000명 정도는 읽고 이해하며, 그만큼 사회에 지식이 누적된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출판 결정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클릭하고 들어오면 1000명이 아니라 이론상으로는 전 인류에게 자기 글을 읽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 도서관이 하던 역할을 ‘서버’가 대신하게 되었고, 개인은 자기 저서가 입고되어있는 도서관을 전 인류의 방 안에다 지어놓은 것 같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이런 판단, 저런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대세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듯하다. 이제 출판은 경제적 유인과 자기 PR의 매개가 되어가는 듯 보인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좀 복합적인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엘리트주의의 한 축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분야 말고 다른 분야에 대해 쓴 주장을 어떻게 믿고 판단할 수 있나, 모든 것을 이제 개인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 갑갑해진다.4) 나는 본격적인 학계(學界)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본격적인 학계야 지금도 여전히 논문이 출판되고 저서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학계까지 안 가더라도 대중성과 학문성 중간 어디쯤 위치하던 권위, 출판으로 지탱되던 그런 권위, 소위 공적 지성 집단의 권위가 이제는 거의 세를 잃게 되었다.5) 게다가 역으로, 오히려 스스로를 학자인양, 학문적 권위를 가진 ‘저자’인양 포장해내는 것도 예전보다 더 쉽게 되었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이러다 보니 (진짜) 권위가 희소성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역으로 엘리트주의를 더 강화시킬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출판업 종사자는 예전에는 지식인 내지는 지성인 쪽에 가깝게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세일즈맨 대우를 받고 있다. 예전에는 출판계를 먼저 거쳐 저자가 되었지만, 요즘에는 블로그 같은 데서 ‘뜨면’ 출판하여 사후적으로 저자‘도’ 되는 게 일반적인 경로다. 물론, 예전에도 출판사가 영업을 중시하긴 했지만, 이제는 출판업이 아예 영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야겠지만, 그래서 으쓱대면서 ‘나’를 말하며 글을 쓰겠지만, 글을 쓰며 ‘필자’라고 자기를 지칭하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내게는 여전히 남아있다.


  1. ‘저자(著者)’할 때 ‘著’자는 ‘나타나다, 분명하다’라는 뜻이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능력과 지위를 갖춘 사람이 저자다. 영어로 author 역시 ‘자기 스스로에게서부터 말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저자로서의 힘이 바로 authority다. ↖︎
  2. 사실, 언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언론이야말로 출판업보다 더 직접적으로 ‘매체의 다양화’에 영향을 받는다. 전통적으로 출판업 종사자와 기자는 학자가 아니라도 지식인 대우 받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기자는 권위가 사라지고, 그에 따라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수준이 저하되고, 그에 따라 ‘기ㄹ기’라는 비칭으로 일컬어질 정도가 되었다. 지금 소위 데스크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언론사에 상관 없이, 영업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다는 게 기사들의 내용과 방향성에 잘 드러난다. 현재 언론사의 영업이란 자본과 권력에 순치되어야 유지할 수 있는데, 웬만한 언론사는 이미 순치되어 있다. ↖︎
  3. 알다시피 블로그는 글을 ‘publish’, 즉 ‘출판’한다. ↖︎
  4. 그렇다고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키’로 대표되는 이른바 집단 지성은 생각보다 믿을 만하다, 편견과는 다르게. 아래 영상을 보라. ↖︎

  5. 물론, 그 집단의 내실이 어느 정도였느냐를 물으면 사실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서 그래도 형식이나마 집단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