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9, 2022

내가 예전에는

율법주의적 경향을 좀 무시했었다. 내가 고신 출신이라 주변에서 율법주의적 경향의 갑갑함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율법주의적 신앙이 결코 무시받을 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차라리 인터넷이 생기지 않았고, SNS가 없었다면 모르되, 이제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 말과 생각을 볼 수 있으니, 이게 편리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있는데 없는 것처럼 사는 것도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 전체가 이런 상황을 기준으로 세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목회를 위한 활동부터가 지장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목소리들을 접할 수밖에 없는데, 내 타협책은 페북 개인 계정을 비활성화한 것이다. 부계정을 파서 뉴스 팔로우하고, 또 내 나름대로 들을 만한 사람들 팔로우하고, 이렇게 최소화했는데도 여전히 많은 목소리들을 듣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사람들 속을 날것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대선이라(사실은 평소에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지 본질은 같더라) 사람들이 진영별로 극명하게 대립한다. 그런데 참 가관인 것은 기독교인들조차 그러하다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한 사람의 시민, 국민이니 지지하는 진영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기 정치적 선택을 신앙으로 정당화한다. 평소에는 매우 자유롭고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삶을 지향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뜨거워져 있는지. 문제는 그들이 헌신하고 열정을 쏟아붓는 대상이 사람들, 신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율법주의적 신앙은 그나마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헌신함을 표방한다. 그러니 어쨌든 성경을 근거로 비판이라도 할 수 있다. 일관되게 근본주의적이기에 예측도 쉽고, 찬동도, 반박도 그리 복잡할 것이 없다. 인신공격을 해도 성경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직접 들고 대쉬한다.

그런데 진영 논리에 함몰되면, 게다가 진영 싸움을 신앙적으로 정당화시키려면 (자기 진영) ‘사람들’을 정당화해야 하는데[이쪽과 저쪽의 논고(論庫, loci)와 현실이 다르지 않기 때문], 기독교인들은 거의 백이면 백, 이 정당화를 성경 말씀으로 하려는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당연하게도 성경은 우상화 작업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니 결국 자기와 대립해있는 진영 사람들을 인신공격할 수밖에 없다. 이건 사람들이 특별히 사악해서가 아니라 논증 구도 상 그렇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상함은 또 유지하고 싶어서 표시 안 나게 인신공격하려고 무지 노력한다(여기서부터 일종의 사악함의 영역이 시작된다 ㅎㅎ). 율법주의적 인신공격을 쓰리쿠션으로 먹인다. 참 가증스럽다. ㅎㅎㅎ 이래 놓고 대선 끝나고 쿨타임 오면 근본주의자들 조롱하고 율법주의적 신앙 까겠지. 다시 쿨한 기독 교양인으로 돌아가겠지.

그간 율법주의 신앙 공박하고 근본주의 논박하던 신학자들, 목사들이 많이들 이번에 뜨거운 민낯을 드러내시더라. 쓰리쿠션도 포기하고, 많이들 다급하신가 보다. 나는 율법주의적 신앙의 폐해를 반대하고 교정하려고 늘 노력했지만, 요즘 들어 율법주의적 신앙의 한 축은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세상은 세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섭리 안에 대한민국이 있지만, 그 섭리가 내 판단과 확신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 정치적 판단과 확신이 절대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더 옳다는 보장도 없다.(이게 기독교인의 기본 중 기본인데!)1) 선택은 하되, 그 선택을 신앙에 결부시키지는 말자, 성경과 다른 권위들, 신앙과 다른 신념들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긋자, 차라리 ‘이원론자’라는 비난을 들을지언정.

그래서 성경을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로 정당화하지도 말고, 다른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성경으로 정당화하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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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연히 모든 선택에는 복음과 신앙의 입장에서 ‘더 나은’ 선택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