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관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자유주의적’인 것이 바로 ‘야경국가’이다. 말 그대로 국가는 야밤 안전 정도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물론, 이 언급은 많이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다). 즉, 극단적인 국가 불간섭론조차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한다. 대단히 새로운 국가관의 출현이다. 심지어 어떤 정부 관계자는 축제가 아니니 주최가 없고, 주최가 없으니 책임을 물을 대상도 없단다(…). 아니, 주최가 있든, 없든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질서 유지를 위해 공권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야당 및 그 극렬지지자들에게 이번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그 중심은 알겠다.1) 그러나 참사 자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국가의 기본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것은 각각 별개다. 게다가 사고 나기 몇 시간 전에 이미 신고가 들어간 것이 밝혀진 지금, 공권력의 부재에 대한 책임을 공권력이 위임된 누군가는 해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대통령 물러가라는 말이 아니다!). 책임이 없다면 왜 그런지라도 ‘책임자’가 나와서 해명해줘야 한다. 외국 언론들이 전부 야당을 지지하고 지금의 한국 정부에 적대적이어서 공권력의 부재에 대해 중하게 문제제기하고 있겠는가? 네덜란드 언론도 그렇고, 미국, 영국 등 다른 언론들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태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문제가 있겠지만, 외국에 사는 처지에서는 야경국가조차 부인하는 듯이 보이는 당국자들의 태도가 특히 눈에 띈다. 과장과 농담을 보태어, ‘아나키즘 국가 실험’이라 할 만하다.
- 나는 정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보는 입장이다. [2025년 1월부로 이하 입장 수정: 큰 틀은 유지하지만, 권력 남용은 견제받아야겠다는 입장으로 수정.]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발목 잡는다’는 식의 불평은 ‘트집 잡힐 일’을 하지 않거나 트집 잡힐 일이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면 된다. 후자에 해당하는데도 안 하면 사실은 트집 잡힐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많고, 그것도 아닌데도 미적미적 눈치만 보면 그냥 정치하지 말고 빨리 그 자리 다른 사람, 다른 당에 주면 된다.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모든 것이 투명하면 트집이나 공격 자체가 시작될 수 없다. 털면 먼지 안 날 사람 있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서로 물어뜯다 보면 털어서 나는 먼지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민주정(民主政)의 최대 강점은 상호견제인데, 용호상박(龍虎相搏)을 벌이게 함으로써 용과 호랑이의 발톱과 이빨을 민(民)이 아니라 용, 호랑이 자기들에게 겨누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물고 먹음으로써 ‘윗대갈’들이 깨끗해지고, 그 이득은 민이 본다. 물론, 특정 계파가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하여 전횡과 독재로 굴러가는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한국이 ‘아직은’ 터키 등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즘 같은 일종의 표적 수사는 보통은 임기 말년에 시동을 거는데, 정부 및 집권 여당이 국정 운영 제대로 할 자신이 없는가 보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