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 2003

J에게─"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소명"의 문제가 고민이 많이 된다고...^^ 사실은 나도 그랬다. 콜링콜링, 발음도 요상한 것이 우리말로는 더 엄숙하다, 소오명~ ㅋㅋ

근데,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소명, 즉 부르심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를 불러내셔서 하나님의 아들 삼으시고, 예수님 동생 삼으시고, 예수님 형제 삼으시고, 예수님 지체 삼으시고, 등등. 이 부르심은 창 1:1에서 제일 처음 나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창조다. 없는 것을 불러 있게 하신다.

너와 나는 없었다. 우린 그저 <생겨난>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 범죄 이후, 하나님 입장에서는 절로 생겨난 존재들은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불러내셨다, 즉 <창조하셨다>. 창조는 단지 존재를 부여받음을 넘어선다. <생명으로의> 창조, 이게 중요하다. 모든 죽은 것은 하나님 눈 앞에는 없는 존재다. 그러니까 범죄 후 타락한 만유는 살아있는 듯 보여도 죽은 존재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셨다>. 그래서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이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구원은 교회로서 받는다.

이렇게 보면 부활한 우리는 이미 소명 받은 자다. 세상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부활한 것을 알고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부르심을 받은 그 자리에서" 그냥 살면 된다. 니 맘대로 살아라.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다가 제대해라.

네가 진정 예수 안에 있다면 네 삶 자체가 이미 편지가 되고 냄새가 된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다를 수밖에 없다."이다. <달라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면서 남들에게 강요하는 율법주의일 뿐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다... 복음은 윤리적 결단이나 윤리적 억압으로 되는 게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게 관건이다. 거친 예를 들어본다면, 이런 종류의 앎에 가깝다고 할까... 내가 울 부모님의 친자식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전과 이후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달라야 하기> 때문에 달라진 게 아니라 <다를 수밖에 없기에> 달라진 것이다(이게 하나님 나라 비유 중 "밭에 감추인 보화"가 말하는 요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달라진 게 없으면서 서로 격려하며 "다르게 살아야 해!" 하는 것은, 참 가상하고 훌륭한 일이기는 하지만, 복음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징표다.

우리에게 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다(아, 물론 사람의 연약함은 항상 인정한다. 언제든지 할 수 없는 일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늘 하고 산다면 이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거짓말하며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며 살 수 <없다>. 육신의 배우자와의 약속도 못지키고 간음을 하는 사람은 하늘 남편인 예수님과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육신의 부모도 제대로 못 모시는 사람은 하늘 아버지를 제대로 모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