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 2010

공주병이 문제다

오래된 글
허세/과격/미숙함 주의

어제 큰딸래미가 엄마를 졸라서 ‘공주 색칠놀이책’을 샀다. 온갖 어여쁜 공주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재밌게 색칠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위로 오려서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마음씨 예쁜 우리 ‘호이’는 아빠꺼라면서 파란 하트를 오려서 내 책상 위에 두고 갔다. 그 하트 안에는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늘씬한 공주님이 분홍색 털이 난 푸들을 안고 있는 장면이 찍혀있다.

우리 부부는 디즈니사에서 나온 공주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우리 딸래미들에게 안 보여주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난 이 애니메이션들이 여자애들에게 굉장히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든 남자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는 걸 누가 탓하랴.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해지는 걸 누가 만류하랴. 근데 디즈니 공주 시리즈물의 문제는 이 행복을 굉장히 유해한 방식으로 정형화시키는 데 있다.

가만히 들여다봐라. 거기 등장하는 소위 ‘공주’들은 죄 남성의존적이다. 게다가 기본 구도가 대부분 남자 잘 잡아서(?) 인생 대박나는 거다. 뭐 이런 이야기들의 기원 자체가, 기사들이 미인 꼬시는 로망스 문학이라는 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다. 원래 전쟁하면서 살던 기사들이 전쟁이 없으니까 따분해서 만들어낸 장르가 로망스고, 하다하다 이 따분함을 못 참고 제 2차 십자군 원정으로 폭발하게 된다. 베르나르두스(= 버나드/베르나르)가 이때 살았는데, 그는 기사들이 전쟁이 없으니까 관심을 ‘미인’들에게 돌리게 되는 상황을 ‘선교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연인’으로 설정하여 신학을 한다. 이런 그가 제 2차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는 선봉에 섰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지 싶다. 미인을 쟁취하는 마음으로 모든 성스러운 것들을 사랑하러 떠난 게 제 2차 십자군 원정군들의 상태 아니었을까. 여튼, 로망스의 남성적 시각을 여성 중심적으로 치환하여 각색한 게 디즈니 공주 시리즈물들이라고 난 본다.

인생 대박나기 위해서는 남자 잘 잡아야 되고 남자를 잘 잡으려면 ‘쭉쭉빵빵’해야 한다. 게다가 더 문제는, 이런 쭉쭉빵빵의 기준이, 서구 백인이라는 사실이다. 최근에 자기들도 좀 민망했던지 ‘포카혼타스’, ‘뮬란’ 등의 동양 미인 주인공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짜’ 동양적이지는 않다. 여기 네덜란드 애들처럼 눈 파랗고 머리 노랗고 이러면 그나마 초큼 나은데, 우리나라 애들 같이 평균적으로 똥짤막하고 얼굴 크고 쌍꺼풀도 없고 이러면 아이들이 받는 데미지는 더 커진다. 현실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난, 과장 좀 보태서, 우리나라에 부는 외모열풍, 성형열풍의 주범 중 하나가 이 디즈니 공주 시리즈물들이라고 생각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1937년에 나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디즈니 에니메이션이 들어온 지도 꽤 됐다. 스토리가 허접하면 모르되, 나름 감동과 재미가 있어서,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공주와 왕자’의 스펙을 내면화하게 된다. 서양사람들이야 그런 스펙 내면화해도 현실성이 좀 있다. 우린? 몸의 비율과 생김새, 그리고 색깔 자체가 다르다. 그럼 어쩌겠는가. 몸이 안 따라주면 그 몸을 바꿀 밖에…

디즈니 공주 시리즈물을 단 한 편도 보여준 적이 없는데 딸래미들은 공주를 좋아한다. 내가 물었다. “호이, 왜 이 책 좋아하지?” “언니들 이쁘잖아!” 본능적이든 문화적이든 ‘이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억압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작고 하찮은 것들도 돌보고 사랑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인간 아니겠는가. 공주가 자아이상(自我理想)이 되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어 가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하찮은 것을 사랑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욕망은 결코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욕망을 생산해야 상품도 생산된다. 생산하고 매매하고 소비하는 게 토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좀 덜 만들고 좀 덜 팔고 좀 덜 쓰는 사람으로 딸래미들이 자라났으면 좋겠다.


2019-05-11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살펴보면, 다행스럽게 우리 딸들은 공주병 중증은 아닌 듯 하다. ㅎㅎㅎ
그리고 요즘에는 위 글에서 말한 반대의 극단으로 가서 문제다. 디즈니가 요즘, 기존 ‘백인’ 주인공들을 소위 ‘언(?)화이트 워쉬’를 하고 있다. 이거야 말로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다. 차라리 새로운 서사를 짜라! 기존 작품들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중심은 ‘서사’이지, 개별 등장 인물들의 인종, 계급, 성이 아니다. 현실을 구성하는 본질은 ‘정체성들의 다발’이 아니다. 이는 수많은 소위 ‘정체성 정치’들에 대해 내가 가진 불만이다. 정체성이 문제적인 것으로 등장한다면 이는 정체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체성을 문제시하게 하는 권력과 그 권력이 짜놓은 서사의 문제다. 특히 디즈니 같은 데서 저런 식으로 ‘정체성 교환’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기들 과오를 마치 없는 듯이 만들어 버리는 처사다. 디즈니는 정체성 정치를 진짜 ‘권력’을 장착한 정치로 밀어붙인다면 분명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포기하고 그 권력에 굽히고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