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06, 2011

모든 신자의 직분

개혁교회의 직분론은 보통 ‘일반직분’과 ‘특별직분’으로 나눈다. 특별직분은 우리가 아는 그 직분들인데, 일반직분은 ‘모든 신자의 직분[het ambt aller gelovigen]’이라고 불린다. 즉 신자라면 직분자라는 것이다.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부르셔서’ 수행하는 것인데, 신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림을 받았다(엡 4:13).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원초적 직분’, 이게 바로 모든 신자의 직분인 것이다. 특별직분은 원리적으로는 모든 신자의 직분에 터해서 성립하는 것이다. [사실 해방측이 총회측을 반박한 가장 근원적인 근거가 바로 이 ‘모든 신자의 직분’이다.]

예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아(그리스도) 선지자, 왕,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셨는데, 모든 신자의 직분과 특별직분은 바로 이 세 가지 기름부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 27).” 그런데 나는 여기서 ‘기름부음’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직분론을 기름부음과 함께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데가 없어서 아쉽다.

성경에서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거룩은 항상 사망을 이김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기름부음 받는 대상은 사람으로는 제사장, 왕, 선지자가 있고 물건으로는 성막 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기름붓기 전에는 육에 속한 것들이었으나 기름부음받은 후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된다. 제사장, 왕, 선지자는 육으로는 죽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의 길은 무슨 대단한 특권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다스림만 드러내어야하는 고난의 길인 것이다. 즉, 기름부음은 자기를 부인하여 육에서 죽고 영으로 다시 살아남을 인치는 것이다. 따라서 기름부음의 본질은 어떤 지위를 얻었다, 직분을 받았다는 데에 있지 않다. 선지자는 기름부음을 받아 옛 사람에서 죽고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다. 물론, 이게 진짜 물리적 생명이 끝나고 부활했다, 이런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는 이제 자기 말을, 자기 육에서 나오는 말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벗어날 때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왕 역시 그러하다. 누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의 왕은 육신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육신에서 생기는 시기, 질투, 경쟁에서 나오는 다스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과 은혜에서 나오는 다스림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죽음에서 도망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이기는 부활생명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고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이런 새 생명을 받기 위해서는 옛 생명, 즉 자기에게서 죽어야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기름부음 받은 왕이라는 자리는 ‘왕’이 부인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드러나는 자리가 된다.

따라서 위에서 인용한 요일 2장의 구절들도 가르침에 기름이 부어진다는 것은 그 가르침이 육이 아니라 (성)령에서 온다는 것을 말한다.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보냄받아 오직 그분만을 가르치는 영이시다. 그러하기에 성령이 곧 기름부음이신 것이다.

기름부음받은 자, 즉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는 교회는, 그러므로 육에서 죽고 영에서 다시 산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다(갈 5:19-21). 이러한 일들은 모두 경쟁과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경쟁과 욕망은,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 몸을 세우는 것이다. 자기 몸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음의 증거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망 권세 아래 있다는 증거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그리스도의 제사는 다른 어떤 것에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망 권세에 눌려 한평생 종노릇하는 자들을 사하시고 속량하는 데 그 절대 효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히 10:26).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자기 몸을 세우려 시기하고 당 짓고 경쟁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제사조차 효험이 없는 것이다.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하는 것 대신 교회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요일 3:16).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육정과 우정, 이런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본질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러,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벧전 1:22) 사이이기 때문이다. 진리, 즉 죽을 몸 가운데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 여기에 순종함이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 여기서 나오는 자원하는 마음, 여기서 나오는 형제 사랑, 이것이 바로 다른 것이 섞여있지 않은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친구라서, 같은 고향이라서, 같은 학교라서, 심지어 부모 자식 관계라서 나오는 사랑조차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인 것이다. [물론, 이 사랑들이 그리스도 사랑의 ‘비유’가 되기는 한다.]

이 사랑은 관념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기름부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한 마리아를 기억한다. 메시아는 육적 소망과 야망을 성취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라 죽는 자임을 안 마리아. 여기에, 이 기름부음에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 전체가 들어있다. 교회의 형상은 항상 마리아에게 있다. 육적 욕망과 바람들을 성취시켜주는 메시아들에게서 돌아서서 무력하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에 죽는 그 메시아, 이분께 기름을 붓고, 또 이분께 기꺼이 기름부음을 당하는 무리. 이게 바로 교회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 26:12-1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7-11).”

모든 신자는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다. 이 명칭은 교황이나 목사들 등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는 명칭이 아니다. 서로에게 '그리스도로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교회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함으로써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신자의 원초적 직분이요, 그리스도의 원초적 다스림인 것이다. 섬김으로써 다스리는 그리스도가 참 그리스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