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 2012

어느 보드리야르빠의 군시렁거림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 있다.1)

내가 사랑하는 금언 중 하나. 요즘 들어 종종 생각하는 보드리야르의 통찰 만땅인 일갈.

박종욱 선수의 세레머니가 실제로 '정치적'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IOC가 그의 세레머니를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데 있다. 참으로 올림픽만큼 정치적인 행사가 어디 있는가! 각자 자기들 '국가'의 이름으로 '경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지 않냔 말이다. 그러나 고대의 올림픽에 대한 '대체/초(超)실재(hyperreality)'인2) 작금의 올림픽은 항상 '정치적 표현'이라는 시뮬라시옹을 가동시키고 있다. 작금의 올림픽은 표면상 고대 올림픽을 재현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고대 올림픽을 원본으로 삼는 것 같지만 고대 올림픽을 단지 자신의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고대 올림픽은 벌거벗고 뛰고 철저히 여자의 참여를 배제했었다. 이러한 벌거벗음과 배제와는 반대로, 작금의 올림픽은 다채로운 색채로 뒤덮여 있으며 어떠한 배제도 배제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각자의 국가의 이름으로 참여한다. 근대 국가만큼 배제가 본질인 실체가 또 있는가? '다른' 나라를 배제하고 '우리'라는 경계를 확실히 그어주는 데서 현대 올림픽의 열기와 추동력이 나오지 않냔 말이다. 지구촌 어느 구석이든 국가의 권력, 이 무소불위의 배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냔 말이다(남북극 빼고). 배제가 있는 곳에 욕망이 있고 욕망이 있는 곳에 자본이 도래한다. 그래서 현대 올림픽은 그렇게 온갖 '협찬자'들의 광고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이 글에 대한 후배의 댓글:
그래서 올림픽 폐막식에서 존레논의 imagine이 불렸나보군요.


  1.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40. ↖︎
  2. 개인적으로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hyperreal'은 그리스어 'hyper'의 전체적인 의미를 포괄하는 것이라 본다. 즉, '대체'와 '넘어섬'을 다같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과도실재'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이는 부차적 위상을 너무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 본다. 보드리야르에게 하이퍼리얼리티의 핵심은 '원본이 없다'는 것이다. 즉 시뮬라크르라는 말이다. 시뮬라크르가 실재보다 더 실재 같기에 실재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게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의 본질인 것이다. 따라서 실재를 '대체'하고 실재를 '넘어섰다', 이렇게 우선은 이해를 해야하리라. 실재를 대체하고 실재를 넘어서서 실재의 지위를 찬탈할 정도가 되면 실재보다 더 실재 같기에 '과도실재'라고도 일컬어질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