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전능하심을 용서하심으로써 그리고 긍휼히 여기심으로써 최고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시여! [Deus, qui omnipotentiam tuam parcendo maxime et miserando manifestas]1)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본령은 그저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데 있지 않다. 물론, 창조와 섭리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신적인 전능의 범주에 든다. 사람이 제작하는 모든 우상들은 '전능'이라는 이름으로 임한다. 그리고 이 전능은 항상 우상 제작자 '자기를 위하여' 작동하는 것으로 귀결이 된다.
그러나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는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용서와 긍휼에서 최고로 드러난다. 전능한 우상들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용서와 긍휼이다. 우상의 세계는 철저한 기브앤테이크의 세계요, 보상과 형벌의 세계요, 기복(祈福)과 저주의 세계인 것이다.
다윗의 시편들, 특별히 시편 86편을 보라. 다윗이 만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용서와 긍휼의 하나님이었다.
(시 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시 86: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86: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율법으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용서함을 받은 다윗. 거기서 그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여호와처럼 행하는 신은 없음을. 그분의 위대함, 그리고 그분이 행한 기이한 일들은 모두 긍휼과 은혜와 인자와 진실을 드러냄의 일환이었음을.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시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시편 118편에 '여호와께서 행하신 우리 눈에 기이한 바'인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음'이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버림받은 돌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낼 모퉁이돌이 된다는 것이기에.
(단 9: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롬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하나님, 우리 일생을 통해 더욱 깊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게 하옵소서!
- 성령강림 후 제 10주일 기도문 중. ↖︎